허영진 목사

수가 성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생수를 요구했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이 우여곡절 많은 삶의 주인공임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셨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아시는 예수님이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요 4:19). 부끄러운 이력이 들춰지는 것이 민망했던 여인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예배 장소 문제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렸으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성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어느 곳이 참예배의 장소인지를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 대신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예배할 때가 오나니”(요 4:21)라는 말은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옛날 것들이 이제는 모두 못 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이 유대인을 통하여 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통하여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심을 믿었습니다.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루게 하리라”(사 49:10). 하나님의 아들은 유대인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예수님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차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애려고 오셨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29).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예배는 어느 특정 장소로 제한할 수 없고, 어느 특정 교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예배하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예배하는 태도가 문제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되 “영과 진리로”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앞서 형제와 이웃과 바르고 아름다운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배에 합당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합당치 않은 태도로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장소나 사람에게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언제 어디나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아들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각 사람의 영혼을 찾아오십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찾아오신다고 가르칩니다(요 3:16-17). 예수님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의 진리에 응답하는 자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그제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마리아인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의 성경(모세오경)에 의하면 메시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습니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신 18:5).
예수님은 메시아만이 알 수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인의 마음에 대담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이 메시아인가?” 예수님이 아시고 대답하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이니라.”이제야 분명해졌습니다. 우물가의 짧은 만남이 한 인간의 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도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굉장한 날이었습니다.
음식을 장만해 갖고 돌아온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침묵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의 뜻과 행위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짐작도 못할 만큼 깊고 오묘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