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죽도록 싫어서 헤어졌는데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힘든 것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헤어지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말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 혹은 경우에 따라서 잘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오늘 소개하는 영화를 보니 이혼 후의 삶이 왜 그리 힘든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재혼 가정에는 이전 배우자와의 갈등 패턴의 재현, 이전 가족 자녀, 새로운 가정에서의 재정 관리 등과 같이 현실적인 갈등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Stepmom’이라는 영화는 그 제목이 보여 주듯이 이전 가족 자녀 문제가 그 주제이다. 남자는 재혼이고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는데 처음 결혼하는 새엄마는 양육 경험이 전혀 없다.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 아동의 1/3은 이혼 가정에서, 1/5은 재혼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통적 의미의 가족 개념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최근에는 새롭게 만난 남녀가 각각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경우에 혼합 가족(blended family), 연합 가족(combined family)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영화는 재혼 후 어린 자녀들과 부모가 부딪치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 내지 두 엄마간의 초기 갈등과 아버지가 공식적인 재혼을 자녀들에게 말했을 때의 냉소적인 반응 등...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흔히 우리는 콩쥐팥쥐나 백설공주에서 보듯이 새엄마가 전처 자식을 학대할 거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에선 새엄마가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아이들이 새엄마에게 버릇없이 군다.

영화 첫 장면에서 어린 아들 벤은 말 그대로 천방지축이다. 아침에 일어나 옷 입고 세수하고 나가야 하건만 어딘가에 숨어 버렸다.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부엌 캐비닛을 열었더니 “메롱!”혀를 내민다. 옷을 갈아 입히기 위해 붙잡으려고 하지만 재빨리 빠져나간다. 한편 12살짜리 딸 애나는 반항적이고 냉소적으로 대꾸한다. 아이들이 엄마 말을 왜 이렇게 안 듣나 싶어 속이 상한 판에, 현관문이 열리고 웬 여성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밝은 얼굴로 “엄마!” 하고 외치며 반갑게 달려간다. 그러니까 새엄마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데 전처인 친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두 엄마가 자녀를 픽업하는 일로 서로의 집을 드나드는 게 어색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심적으로 헷갈릴까?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두 엄마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아버지의 역할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새엄마와 친엄마의 갈등, 새엄마와 아이들의 갈등을 보여 주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새엄마는 상업사진작가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워 본 경험이 없는 데다 아무리 애써도 친엄마의 양육 기준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픽업 시간에 늦거나 잊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하는 등 뭐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다. 결국 사건이 터진 다. 아이들을 야외 사진 촬영장에 데려갔는데 어린 벤이 없어진 것이다. 경찰서에 있는 벤을 찾으러 남편과 새엄마, 친엄마가 총출동한다.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았던 친엄마는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걸어 양육권을 가져오겠다고 하지만, 전 남편이 겨우 달래서 일을 수습한다.

새엄마와 아이들의 갈등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십대의 딸은 방 문에 ‘KEEP OUT’ 표지를 붙여 놓고 새엄마와의 접촉을 제한하려 한다. 새엄마가 잘해 보려고 강아지를 선물로 사왔건만 개에 대한 앨러지가 있다고 쏘아붙이고, 새엄마에 대한 앨러지도 있다고 막말을 한다. 한참 예민한 나이의 표정 연기와 미운 감정 연기를 실감나게 잘한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학교에서 겪은 어려운 일에 대해 조언을 해주려 하지만 “나는 당신 조언이 필요 없다!”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숨이 콱 막힌다. 어린 동생 벤은 누나처럼 무조건 새엄마가 싫다. 새엄마가 잠자리에 책도 읽어 주고 갖은 노력을 하건만,“엄마가 새엄마를 싫어하라고 하면 그렇게 할께!”라고 친엄마에게 말하는 걸 보니, 철 들려면 멀었다 싶다.

영화의 전환은 동거 관계에 있던 남자가 새엄마에게 정식 청혼을 하면서 일어난다. 반지를 실에 끼워서 내려 보내 여자의 손가락에 끼우는 청혼 장면이 이색적이다. 남편은 첫 결혼에선 반지를 끼우는 의미를 잘 몰랐노라고, 이번에는 잘 해보겠노라고 다짐한다. 이제 아이들에 대한 새엄마의 역할이 공식화된 것이다. 한편, 암에 걸린 걸 알게 된 전처는 그 사실을 말하려고 남편을 만나지만 남편의 결혼 소식에 말을 접는다.

그러나 영화는 해피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아이들이 새엄마에게 서서히 마음 문을 열게 되고, 두 여인은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어느덧 친구가 된다. 딸 애나는 새엄마가 그림 그리기를 도와 주고, 또 남자 친구가 아이들 앞에서 창피 준 것에 대해 보기 좋게 되갚으라는 조언을 해주자 마음이 확 열린다. 벤은 놀이터에서 다쳐 다섯 바늘을 꿰맸을 때 새엄마가 오래 전에 유명했던 팝송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를 자장가로 불러 주자 마음이 확 열린다. 이 녀석은 처음부터 마음이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엄마가 타주를 방문하고 돌아오자 새엄마와 아이들은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 사진 작가인 새 엄마가 자녀들의 사진을 실제 크기로 현상해 방안 가득 세워놓은 것이다. 자녀들을 끔찍하게 챙기는 친엄마의 마음이 열리는 계기가 된다. 사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는 친엄마의 마음이 많이 약해진 탓도 있으리라. 친엄마의 “I have their past, and you can have their future.”라는 명대사가 인상적이다. 또, 두 엄마는 먼 훗날 애나의 결혼식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새 엄마는 애나가 친엄마가 있었으면 할 것을 걱정하고, 친엄마는 딸이 그렇게 안할까 봐 두렵다면서 속을 내놓고 함께 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와 친엄마와 자녀 둘을 사진작가인 새엄마가 촬영하는 장면이다. 이어서 친엄마가 새엄마를 불러서 자동 셔터로 다섯 명이 함께 사진을 찍는다.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하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말라기 2:16).
이 영화는 재혼 가정의 자녀 양육 문제를 우여곡절끝에 잘 극복하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하고 꿈 같이 행복한 장면도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이혼을 미워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영화를 돌이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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