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목사

로마서 8:24-25

사냥꾼에게 쫓기던 꿩이 풀섶에 고개를 묻었습니다. 이윽고 총소리가 울리고 꿩은 쓰러집니다.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몸뚱이는 노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갑갑하고 답답한 걸 참고 기다렸지만 말짱 헛일이 되었습니다. 
사냥개가 곰에게 달려듭니다. 곰의 앞발에 얻어맞아 피가 흘러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물고 늘어집니다. 무섭고 아파도 참고 매달립니다. 사냥꾼이 달려옵니다. 총소리와 함께 곰이 쓰러집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음은 꿩보다 사냥개의 참음 같은 것입니다.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며 참고 기다리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미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까?
첫째, 자기 자신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영적으로 천박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아직 죄의 찌꺼기가 청산되지 못한 것을 느낍니다. 속된 유혹에 여전히 마음이 흔들립니다. 화가 나고 참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끈기 있게 참고 기다리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쉬지 않는다면, 영의 세계는 한없이 높고 넓어지며 승리는 무한한 것이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슴이 메어지고, 복장이 터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편물을 한 줄씩 짜듯 매일 성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믿음의 역사를 짜나가면 어느새 영혼이 아름다운 의상을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를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의 위선이나 잘못에 대해서도 참아야 합니다. 사실 땅 위에 교회다운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상적인 교회와 현실의 교회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천사가 아니라 사람을 가지고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실 교회에서 인간성의 모든 약점이 드러납니다. 교회가 죄인을 용납하고, 싸우는 자, 연약한 자, 속된 자, 게으른 자들을 모두 구별 없이 환영하는 것은 교회의 수치가 아니라 교회의 영광입니다.
교회의 전통에 대해서도 참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기관입니다. 교회는 강력한 전통과 신조와 의식과 관습 등이 있고, 독특한 사고방식과 예배형식과 봉사방법들이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합치되는 것으로 인정되고 경험되고 실증되고 세대와 세대를 통해 계승되어 온 것들입니다.
물론 교회의 전통이 모두 신성불가침은 아닙니다. 변천하는 새 시대는 새 스타일과 새 이미지를 요구합니다. 문제는 오랜 전통과 새 시대의 요청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변화는 억지로 만든 혁명적 변화가 아닙니다. 사랑과 참을성을 통해 얻어진 변화입니다.
교회의 결정에 대해서도 참아야 합니다. 교회의 결정이 우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에 배치된다고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결정을 바로잡는 일에도 참음으로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흙탕물로 맑은 물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요한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밝히려면 고요히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급하다고 서두르면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되기 십상입니다.
쥐덫에 걸린 쥐는 기를 쓰고 버둥거립니다. 교회에서 내 주장의 관철만 서두르는 것은 사탄의 덫에 걸린 결과일 수 있습니다. 경계할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얍복강변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들입니다. 이 씨름은 쉽사리 결말이 나지 않습니다. 초조하고 조급합니다. 하늘을 향해 기도의 함포사격을 해도 응답은 미미합니다. 그렇다고 항변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참고 기다리는 분이신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참음으로 기다려주지 않으셨으면 오늘 우리의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해 참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을성의 근거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좋은 때요, 가장 옳은 때라는 확신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다 있었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 참고 기다리는 길을 택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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