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logy in Movies

70년 이상을 함께 한 미국의 90대 노부부가 손을 맞잡고 함께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1시간 간격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두 사람이 손을 붙잡고 있었고, 장례식에서도 두 사람이 손 잡고 관에 있도록 했다는 후일담. 신혼이나 중년은 물론이고 노년까지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노년 부부 영화를 연속해서 소개한다. 그런데 노년의 사랑에는 큰 장벽이 있으니 육신과 정신 건강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바로 치매라 불리는 알츠하이머 병이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지난 번에는 남편이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는 영화‘Away from Her’를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치매 걸린 남편을 돌보는 영화 ‘A Song for Martin’을 소개한다. 조금은 생소한 스웨덴 영화라서 느낌이 또 다르다. 게다가 남녀 주인공들이 음악가여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클래식 음악이 배경에 계속 깔린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남자와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여자가 각자의 결혼 관계를 청산하고 재혼한다. 영화 초반부에서 주인공 여자는 “올해 크리스마스에 가족 만남은 없다”며 결혼까지 한 다 큰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와의 지난 몇년은 죽은 결혼이었다! 이혼한다!”고 선언한다. 조금 황당하다. 이런 두 남녀의 합법적인 만남이니 불륜이라 하기에도 그렇고 유럽이라서 가능한가 생각하다보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예외가 아니지 싶다.

남자는 이미 은퇴를 앞둔 나이로 보이고, 여자는 아직 노년은 아닌 것 같은데 둘은 황혼의 사랑을 뜨겁게 시작한다. 신혼 여행을 하면서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떠나지 말자고, 거짓말하지 말자고 약속한다. 작곡을 하고 지휘를 하는 남편을 역시 음악을 잘 이해하는 아내가 옆에서 도우니 금상첨화의 부부로 보인다.

그런데 결혼하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면도하다 말고 “여기가 어디지?”라고 물으면서 멍청해진다. 진정하느라 마신 술 이름도 여러 번 교정해 준 후에야 제대로 기억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피아노를 치며 악보를 그려나가다가 문득문득 딴소리를 한다. 치매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의사는 다 정상이지만 음악회 연주에 따르는 과로를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어렵사리 연주회 지휘를 하는 도중에, 힘차게 올라갔던 주인공 남편의 팔이 허공에 멈춘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중지되었고, 남편은 지휘대에서 내려와 무대를 빠져 나간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잊어 버리는 증세가 다시 도진 것이다.

정밀 검사를 받은 남편은 치매에 걸렸으며, 피 순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소 하던 대로 살라. 대신 좀 천천히 살라.”는 의사의 무덤덤한 조언을 들은 부부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다.
차츰 여러 치매 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미 갔던 식당에 또 간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두 번 동행하는데, 영수증을 본 남편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어쩔 줄 모른다.

일상 생활이야 아내가 옆에서 돌본다 치지만, 새로운 연주회를 앞두고 작곡을 해야 하는데 작업 진도가 예전만 못하다. 이제껏 남편을 지탱해 온 음악 세계에도 치매의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치는 것이다. 하루는 며칠 내리 작업한 악보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밖에 나가 쓰레기통 속에서 악보를 발견한다. 아내는 화를 내고 남편은 등을 돌리고 누운 밤, 결국 아내가 거실에 내려와 따로 자는 일까지 생긴다.

아내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신혼여행 갔던 곳을 다시 찾는다. 둘은 아름다운 해변의 호텔에 간다. 신혼 여행을 갔을 때에는 남편이 아내를 이끌었는데, 지금은 아내가 남편을 안내한다. 여러 날 계획하고 왔지만 남편은 돌아가는 날짜만 계속 확인하고, 바닷가에서 수영하다가 남편이 익사 직전에 구출되는 일까지 생긴다.
작곡한 악보를 보내달라는 재촉을 받은 남편이 영감이라도 떠올랐는지 한밤중에 피아노를 치면서 악보를 그리더니, 다 되었다면서 우편 발송하라고 아내에게 준다. 그런데 봉투 안에서 완성되지 않은 빈 악보들을 발견한 아내는 그 동안의 작은 희망마저 무너지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자고 약속했건만, 실망할 남편을 생각하며 악보를 잘 보냈다는 등 연주회가 준비되고 있다는 등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연주회 날짜를 기억해내는 바람에 모든 사실이 드러나고 만다.

드디어 일뿐 아니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남편의 생일에 온 가족이 식당에 모였는데, 아내가 선사한 스웨터를 입고, 딸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으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데, 화장실 간다고 일어난 남편이 장식용 트리 바스켓에다 소변을 본 것이다. 어린 손자 손녀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바지를 올려주면서 말리는 아내에게 완력을 행사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위협한다. 결국 주치의가 와서 진정제를 놓고서야 상황이 정리된다. 의사는 자신이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는 단계이니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말자”던 약속을 금과옥조로 지키느라 그동안 정신적인 위로와 육체적인 수발을 감당해 온 아내는 다음날 아침에 입원하라는 의사의 말에 남편을 껴안고 펑펑 운다.“이제 남편은 더 이상 당신이 결혼했던 당시의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사의 무덤덤한 조언은 아내에게 감당하기 너무 어려운 말이다.

아내는 힘든 간호에서 벗어나 잠시 요양을 하면서 남편 딸과 대화를 나눈다. 아내는 자신이 잘하지 못해 남편이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자책하고, 남편의 딸은 “아니에요! 최선을 다하셨어요! 아버지도 입원을 이해하고 동의하실 거예요”라면서 위로한다. 이때 아내의 불굴의 의지가 다시 표출된다. “나는 포기 못한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무슨 의미일까?
영화의 마지막은 아내가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컴백하고, 딸 역시 오케스트라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남편은 지휘하는 장면이다. 실제 일어난 것은 아니고 에필로그로 준비한 장면 같다. 여기서 남편의 이름을 딴 영화 제목 A Song for Martin이 나온 듯하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21-25).

치매에 걸린 남편을 향한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 누가 아프고 누가 돌보고를 떠나‘피차 복종하라’하신 말씀을 기억해 본다. 하지만 나 혹은 주변의 누군가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속 아내만큼 헌신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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