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제는 성탄절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만을 축하하는 절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경축하며 심지어는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조차 성탄절을 축제일처럼 지키는 절기가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곧바로 길거리는 성탄절 장식으로 가득차고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흥에 겨운 소리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흥얼거린다. 하지만 정말로 무엇 때문에 기쁜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단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과 흥겨운 노래,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선물 등으로 마음이 들뜨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은 이런 것들에 들떠서 진정한 의미의 성탄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기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들 역시 세상 명절 중의 하나로 그냥 흘려 버릴 때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이 우주 만물 중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들이 사는 이 땅에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과 똑같으신 분이다.

그럼에도 그런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오히려 자신을 우리 인간처럼 낮추어 종과 같은 낮은 자리로 오심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아기 예수로 이 땅위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된다.

우리들은 언제나 큰 것, 대단한 것, 높임을 받는 것에 기준을 둔다. 언제나 높은 것, 많은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키 큰 사람, 덩치도 큰 사람을 선호한다. 보통 보다는 특별한 것을 좋아해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일반진료보다는 특진, 일반 병실보다는 특실, 설렁탕도 특 설렁탕이 더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위에 오실 때에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궁궐이나 부잣집에 귀족, 혹은 권세 있는 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베들레헴 저 시골구석에 목수의 아들로 오셨다. 그러니까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이 땅에서 보여 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진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배워야 한다. 언제나 가장 높은 자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작은 자의 위치에 서지 않으려고 하며 작은 자의 위치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실패와 패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점점 더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세상을 살아간다. 조금 힘들고 실패한 것 같으면 스스로 목숨까지도 끊어 버리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성탄절을 통하여 가장 크신 하나님께서 가장 작은 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습이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낮아질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은 가장 부요하여 모자란 것이 없으신 분이 참으로 가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일생을 부자로 살기 바란다. 부자가 되기 싫어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요케 해주시려고 가난해지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인가? 아마 빌 게이츠나 워렌 버펫 같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부자들이 정말로 부요를 누리고 있는 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삶을 부요하게 살았던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을 보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항상 같은 수녀복에 샌들을 신고 지팡이 하나 집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부자라고는 말 할 수 없음이 확실하다. 한 평생을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살기를 소원했던 한 경직 목사님 같은 분도 은퇴하신 후에 남한산성의 집에서 침대 하나, 낡은 옷장 하나로 만족하며 여생을 보내셨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정말로 삶을 풍요롭게 사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우리들 가운데 아무리 가난하고 없다고 하여도 마구간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얼마나 가난하셨던지 태어날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짐승들과 함께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궁궐에서 태어나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장 초라한 곳으로 오신 것이다.

오신 것만이 아니라 그의 일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의 하늘을 만드시고 땅을 만드셨음에도 불구하고 거처할 장막이 없었으며 돌아가실 때에도 편히 죽지 아니하시고 두 범죄자 사이에 끼여 죄인과 같이 십자가에 알몸으로 아무 가진 것이 없이 돌아가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이 모든 가난이 우리를 부요케 하고 풍성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부요하고 풍성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비록 이 땅에서 많은 돈과 물질을 갖지는 못해도 우리가 가진 것에 관계없이 오히려 모든 것에 만족하여 부요함에 이르는 그런 삶의 여유와 평강이 넘치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낮고 낮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 그것도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고, 또 자기 자신을 정말로 낮추셔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왕의 특권 모두를 버리셨다. 게다가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가장 겸손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흥얼거리는 성탄의 계절이다. 모든 사람들이 성탄의 참 뜻도 모르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 계절이지만 우리 크리스천만큼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마음을 본받아서 죽기까지 낮아질 수 있는 그런 기쁨과 평강의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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