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짜리 교회(28)

‘예수님짜리 교회’ 라는 제목으로 2010년 가을부터 쓰기 시작한 이 글이 2011년을 거쳐 이제 2012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신약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교회, 즉 유기적 교회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나름 노력했는데, 제가 독자들을 얼마만큼 이해시켰을지 궁금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은 단 하나, 즉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누리시던 생명과 사랑의 교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확장되는 것임을 우리는 살펴 보았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나온 그리스도의 신부요 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교회가 이 세상에 유기적인 모습으로 드러날 때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저는 계속 강조해왔습니다.

2012년에 종말이 오더라도

2012년에도 저는 이런 유기적 교회를 지향하며 글을 써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은 2012년에 세상의 종말이 올지 모른다는 데 쏠려 있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마야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난다는 것을 근거로, 또 그날에 2만5천8백 년을 주기로 나타나는 현상인 태양이 은하계의 적도와 지구 사이에 들어가 일직선을 이루는 것을 근거로 종말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또 교회 안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몸 안에 베리칩(very-chip)을 집어넣어 콘트롤할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표’라는 주장을 하며, 그 시기가 아주 가까웠다는 저자들이 쓴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어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신론자 스피노자가 했다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습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신약성경이 말하는 유기적 교회를 세우는 데 전념하겠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단 하나의 이유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교에 물든 기독교

그래서 저는 책 한 권을 소개하면서 2012년의 첫 글을 대신하려 합니다. 최근에 제가 번역한 책으로서 12월 말에 한국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책이 요사이 제가 쓰고 있는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현대 교회가 어떤 면에서 신약성경에서 멀어졌는지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되리라 여겨집니다. 대장간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교에 물든 기독교』가 바로 그 책입니다.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가 공동으로 저작한 책입니다. 아래에 추천의 글을 쓴 복음신학대학원 배덕만 교수의 글을 인용하며 이 책을 권합니다.

배덕만 교수가 쓴 추천의 글

“21세기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요즘 제가 가장 고통스럽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교회와 거리가 멀었던 제 아버지는 어린 제가 교회 가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제가 주일아침에 늦잠을 자면, 저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교회에 보내셨습니다. 정작 당신은 오랫동안 기독교인이 되길 주저하셨지만, 자식들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교회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기독교인, 심지어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목사인 저는 오늘날 제 자식들에게 기독교를, 교회를 “강추”(?)할 자신이 없습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추문들, 심지어 제 눈으로 목격했던 기막힌 장면들에 대한 기억이 제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한, “천하보다 귀한” 제 자식들을 그렇게 ‘불량한 집단’ 안으로 밀어넣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만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판단이 아닙니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융단폭격이 날로 더해가고, 교회에 절망한 사람들의 집단 개종이 급증하며, 소위 “대안적 교회”들이 버섯처럼 사방에서 솟아나는 현실은 이런 참담한 현실에 대한 참혹한 물증입니다. 광인(狂人)의 망언(妄言)이 아닌, 더는 부정하거나 감출 수 없는, 타락하여 몰락하는 추한 종교의 실체입니다.

이런 정황에서『이교에 물든 기독교』출판 소식은 ‘고통스러운 복음’ 입니다. 이 책의 출판 자체가 이런 ‘극약 처방’이 필요한 상태까지 한국교회가 추락했다는 간접증거이기에 극심한 고통입니다. 이렇게까지 발가벗겨야 할 정도로 뒤틀린 현실, 이렇게 치욕스런 폭로 앞에서 변명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은 가히 고통을 넘어 절망입니다. 과연, 우리 목에 닿은 이 날 선 칼끝 앞에,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뒤틀린 역사, 병든 교회를 향해 “날 선 검”이 날아드는 상황은 동시에 “복음”입니다. 이제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살아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추었던 진실을 드러내고, 뒤틀린 성경의 본 모습을 되찾으려는 몸부림 자체가 정녕 복음입니다. 더욱이 이때 사용되는 “날 선 검”이 원한에 사무친 자객의 칼이 아닌, 사랑하는 의사의 정교한 메스라는 소식은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가 쓴『이교에 물든 기독교』는 학문적으로 훌륭한 책입니다. 현대 개신교의 핵심적 전통 혹은 관행(교회건물, 예배순서, 설교 등)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학문적 탐색을 탁월하게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여 일체의 의혹이나 도전이 허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과연 이것들이 얼마나 성서적 근거가 있는가?”란 도전적 질문을 제기하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회사 속에서 철저히 추적, 검증했기 때문입니다. 전문역사가들이 아님에도, 그들이 수행한 작업의 학문적 엄정함과 완성도는 탁월합니다.

물론, 21세기에 초대교회의 진실을 정확히 복원하는 일은 그 자체로 한계가 분명합니다. 고대사회의 다양한 전통간의 복잡한 상호작용, 특히 그것들이 교회 안으로 내재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난해한 화학작용을 고대문헌들, 혹은 현대 역사가들의 연구에 의해 단정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성과들을 충실히 반영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점에서, 본 저서의 학문적 가치는 충분합니다.

동시에 이 책은 교회적 차원에서 매우 위험한(?) 책입니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학문적 차원에서는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한 ‘기독교 내의 이교적 요소들’은 이미 성서학자들 및 교회사가들에 의해 오래 전에 밝혀진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학계의 결과물이 교회 안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성경을 그토록 숭앙하면서, 정작 성경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교회생활을 그토록 열심히 하면서도 그 열심의 대상과 의미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시도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올라와 바나는 교회가 당연시했던 사항들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그것의 이교도적 기원과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그들의 펜 끝에서 그동안 교묘한 언어로 포장되었던 이교적 신학, 철통 같은 교권으로 강제되었던 이교적 관행,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혔던 이교적 전통이 마치 두꺼운 분칠이 지워진 추녀의 얼굴처럼 그 흉한 실체를 드러냅니다. 이 금단의 열매가 한국교회에 일으킬 파장이 무섭습니다. 마치 최근 한국정치판에 부는 “나꼼수”의 열풍이 이 책을 통해 한국교회 안에 재현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명백한 진리 앞에 용감하고 정직한 반성 대신, 타락한 교권주의자들의 기만적 마녀사냥이 발생할 것 같아 섬뜩합니다. 이 책을 읽은 어떤 사람도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그들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이 책은 신앙적 차원에서 정말 소중한 책입니다. 이 책이 시종일관 주장하는 것은 교회의 교권구조가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주목하는 성경적 교회는 “유기적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선 모든 성도가 각자의 은사에 따라, 자율적이고, 창조적이며, 평등하게, 그리고 다른 성도들과 더불어 친밀하게 기능을 합니다. 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며, 그분의 혁명적인 꿈이 공동체 속에서 철저하게 실현됩니다.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체의 문화적, 정치적 이교주의와 치열하게 싸우며, 뒤틀린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강력하게 실현합니다. 이런 공동체는 결코 사회의 주류로서 세상 속에 안착할 수 없으나, 진리와 생명을 상실한 세상에 진정한 구원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증거합니다. 자신의 세속적 기득권을 정당화, 영속화하기 위해 타락한 문화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한국교회는 무릎 꿇고 이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예수와 상관없는 종교, 성경과 단절된 종교’란 참담한 낙인을 씻어내기 위해, 한국교회는 ‘지금 여기서’ 이 역사적 진실 앞에 용감히 서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제 자신의 뒤틀린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 책을 당신의 교회에서 교우들과 함께 읽을 용기가 있는가?” “교우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던질 질문들에, 제기할 비판들에 당신은 정직하고 용감하게 답변할 자신이 있는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교우들과 이 책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고 좀더 겸손하고 정직하고 진지하게 성경을 읽겠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분투하겠습니다. 그 결과, 벌어질 일들에 대해 신실하고 진실하게 반응하겠습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진정한 회개와 참다운 부활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동참을 호소합니다. 이 책을 함께 읽읍시다. 성령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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