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지음 / 열림원

‘성경에는 밥이란 말이 단 한 곳에서도 나오지 않는군요. 하기야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슨 쌀밥, 보리밥을 먹었겠습니까? 당연히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겠지요. 그런데 위의 성경 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빵이 떡이라고 되어 있군요. 그래서 밥을 주식으로 먹고 사는 한국 사람들이면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세상에 떡만 먹고 사는 사람도 있나. 별 이상한 소리 다 듣겠네.” 그러고는 “사람이 어떻게 떡으로만 사나, 밥을 먹어야지”라고 할 겁니다. (...)

유감스럽게도 새롭게 개역을 하고 문어체를 구어체로 고쳐봐도 성경은 시와 소설처럼 그냥 읽기는 힘이 듭니다. 그냥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해와 왜곡을 범하기 쉽습니다. 근대화와 함께 밥과 빵이, 떡과 케이크가 서로 뒤바뀌는 문명의 상황 속에서 살아온 우리지만 아직도 빵을 떡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서양도 성경도 신기루처럼 환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낸 것이지요... 디테일을 넘어서 눈에 보이는 대상물들을 뛰어넘어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들을 수 있기에, 시와 소설 작품을 평할 때처럼 성경을 문학평론 혹은 문화 비평의 텍스트로 읽으면서 예수님의 몸(corpus)을 언어학에서 말하는 코퍼스(자료체)로 분석해 봤던 것입니다. 그냥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말입니다.

몸을 뜻하는 신체(身體)란 말이 어떤 공동체(共同體)나 조직체(組織體)의 체(體)로 변하고 그것이 더 큰 사회나 국가의 체재(體裁)의 뜻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미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맹자에서 그 과정을 보아왔던 그대로입니다. 몸이 집이 되고 그것이 나라로 변해 우주 전체의 천하가 되었던 거죠. 그리고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빵을 통해서 추상적인 예수님의 성체(聖體)로 이르고, 그것이 다시 지상에서 하늘로 향한 영체(靈體)가 되어 하나님의‘말씀(logos)’과 접속되는 과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성경 시학(bible poetics)이라고 한 것이지요.’(본문 중에서)

 문학비평가이자 기호학자인 이어령 국문과 석좌교수가 텍스트로서의 성경읽기라는 새로운 독법을 통해, 성경도 문학작품처럼 쉽고 재미있게 음미할 수 있는 텍스트임을 증명해 보인 신간이다. 성경 속의 아이콘들이 품고 있는 문화적 상징과 이미지들을 분석해 성경이 감추어둔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저자가 2007년 기독교로 귀의한 뒤에 출간했던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이은 두번째 기독교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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