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온 그는 모든 것을 회복했습니다. 귀신은 쫓겨났고 정상적으로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놀라며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마 9:32-33).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능력 행하심을 보고 모두가 놀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예수님)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마 9:34)고 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역시 예수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때의 반응 역시 두 가지였습니다. 함께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마 12:23)며 예수님을 메시아로까지 생각하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이(예수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 12:24)며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귀신이 하는 일로 매도해버렸습니다.  

무엇이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이런 반응을 하게 했을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들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행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교만한 마음. 둘째,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일이 무엇이든 반응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현상 자체에 탄복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악의에 찬 반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후자는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생각하여 자신에게 손해다 싶으면 가차없이 상대나 일을 매도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기간 내내 이런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손에 의해, 그들의 손에 매수당한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이 땅에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온 몸으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감독이자 공학전문가였던 하인리히는 노동재해가 발생하는 과정에 대한 실제 증거들을 연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의 사고로 중상자 1명이 생겼을 때, 그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그리고 운이 좋아 사고는 안 당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했던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명 ‘1:29:300 법칙’입니다.

미국의 위기관리연구소는 5만여 건의 각종 위기 사례를 분석해서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위기 사례의 86퍼센트가 갑작스럽게 닥친 것이라기보다 이미 장기간에 걸쳐 많은 징후가 나타난 위기였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최근 10년간의 교통사고 통계를 분석했는데, 1회의 사망 사고에 40여 회의 중경상 사고가 발생했으며, 수백 건의 위험한 교통법규 위반 사례가 적발됐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폭행, 강도, 살인 등 강력사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하인리히의 법칙을 우리의 내면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어떤 현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악의에 찬 반응인지 아닌지는 이미 수많은 사전징후들을 통해 우리의 내면에 있어 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모습을 보고 귀신의 왕을 힘입은 것이라고 매도한 바리새인들의 마음에는 이런 반응을 하게 한 사전징후들이 수도 없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4-35).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당신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요즘 보이고 있는 당신의 반응은 어떤 것입니까? 긍정적이고 순수한 반응입니까? 악의에 찬 반응입니까?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칭찬과 격려의 말입니까? 헐뜯고 깎아내리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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