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광주)

우리의 생명은 결코 우리 손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을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우리에게 유한하게 주어진 생명의 불꽃을 아낌없이 태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확인한 어제 하루는 아득하고 꿈만 같다.
광주에서 새벽에 출발해 7시 40분, 학교에 도착해서 주차하려는 순간 차는 앞으로 돌진했다. 시멘트 턱을 넘고, 낮은 나무 울타리를 넘어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계속 나아가던 차는 아람이 그리 굵지도 않은, 두 손바닥으로 감싸면 양손가락이 겹쳐지는 작은 나무에 걸렸다.  나무에 걸려 80여도 경사진 모습으로 멈추었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2m가 넘는 급경사 언덕을 돌진해 내려갔으니 나무가 없었으면 그대로 전복되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내 생명은 그곳에서 조용히 끝났을 것이다. 일부러 내려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곳이니 사고가 있는 줄 어찌 알겠는가.
그 누군가 몇 년 후에 이곳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고 목련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겨우 문을 열고 나왔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실감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죽음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드는 것이란 생각만 들뿐이었다.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하이 카에 연락하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리는 떨려서 아픈 줄도 모르고, 머릿속은 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차가 떨어진 지점으로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차를 멈추게 한 목련나무는 우유빛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차가 걸렸을 땐 그냥 나무인 줄 알았다. 저를 던져 온몸으로 막아준 목련나무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견인차가 도착해서 기술도 좋게 차를 어루만지듯 한 시간여만에 끌어냈다. 그건 예술이었다. 고상한 미 또는 사치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예술이었다. 기사의 장인에 가까운 솜씨는 정말 존경스러웠다. 공업사로 보내기까지 두 시간이 지나갔다. 길고 길었다.
교실에 들어가자 한 아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데 매일 듣는 그 인사가 왜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는지. 안녕이란 어휘가 담고 있는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명치 끝이 아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자신이 던진 그 말이 내게 지닌 엄청난 의미를 짐작이나 할까. 아이의 인사를 받으면서 이제부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땐 그냥 쉽게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닌, 그 인사에 나의 온 진정성과 내 영혼을 담으리라 가슴에 아프게 새겼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냥 우울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오래 살겠다고 위로했지만 나는 다행이라거나 감사하다거나 그런 마음이 일지 않았다. 아직은 나의 때가 아니어서 그렇게 위기를 피하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제, 그곳에서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던 내 생명을 이렇게까지 구해서 나에게 주고자 하는, 내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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