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짜리 교회(41)

 지금까지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로서의 십일조의 문제에 관해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이 주제를 떠나면서 지난번에 이어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의 책 『이교에 물든 기독교』(대장간)의 8장에 있는 내용에서 결론 부분을 여기에 인용하는 것으로 이 주제에 대한 저의 결론을 대신합니다. 아래는 그 책의 237-242페이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담


만일 믿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결정 또는 확신에 의해서 십일조 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괜찮다. 그러나 십일조가 모든 신자를 묶어 버리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타난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구약의 제도 아래에서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의무적인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감당할 수 없는 헌금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심한 가난에 허덕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복음이 더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좋은 소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거운 부담이 되어 버렸다. 자유가 아니라 압박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제정하신 원래의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주려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거꾸로 말하면, 현대의 십일조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다. 수입이 많은 사람에게 10퍼센트는 얼마 안 되는 분량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부자들의 생활방식에 큰 충격을 주지 못하므로 그들의 양심을 마비시킨다. 적지 않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수입의 10퍼센트를 헌금 바구니에 넣고서 “하나님께 순종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헌금에 대해 아주 다른 견해를 갖고 계시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를 상기해 보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눅 21:1-4).

애석하게도 십일조는 종종 제자도의 리트머스 테스트로 간주된다.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일조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엉터리로 적용한 것이다. 십일조는 그리스도인의 헌신도를 말해 주는 증거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남아 있는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볼 때 바울이 세운 1세기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헌신되지 않은 사람들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를 하라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하는 배후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근원 중 하나는 성직자 사례비이다. 적지 않은 목사들이 그들의 생활비와 목회 활동비와 프로그램을 지원할 의무가 회중에게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십일조가 계속 굴러 들어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자극제로 물질적 축복의 약속이나 물질적 저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도 자주 사용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십일조는 때때로 기독교 증권 투자에 버금갈 정도로 제시된다.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돈으로 돌려 주실 것이요, 십일조를 거부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 생각은 좋은 소식인 복음의 심장부를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결론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십일조가 성서적이긴 하지만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지 않았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300년 동안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아낌없이 헌금하긴 했지만, 종종 그들이 가진 것의 10퍼센트 그 이상 십일조가 8세기까지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시행된 관습이 아니었다.

십일조는 신약성서에 단 네 번밖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단 한 군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십일조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특별한 제사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제도가 필요했던 구약시대에 속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율법의 변화’가 생겼다-옛것은 “따로 젖혀두고” 새것에 의해 폐기된 바 되었다 (히 7:12-18; 8:13).

우리는 지금 모두 다 제사장이다-하나님의 집에서 자유롭게 제 기능을 발휘하는. 율법, 옛날 제사장 제도, 그리고 십일조는 전부 다 십자가에서 못 박혔다. 이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성전의 휘장, 성전 세금, 그리고 특별한 제사장 제도는 없다. 당신은 십일조의 굴레와 비성서적인 성직제도를 지원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당신도 1세기의 마게도냐 그리스도인들처럼, 죄책감이나 종교적 의무나 조작 없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기를 바란다 (고후 8:1-4; 9:6-7).

* 십일조의 문제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프랭크 바이올라와 조지 바나가 공저한 『이교에 물든 기독교』(대장간) 8장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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