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sychology in Movies

 그렇게 완성도가 높지도 않은 영화의 예고편 하나가 유튜브에 올라온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무슬림들의 반미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무슬림의 무지 Innocence of Muslims’라는 영화인데, 미국에 거주하는 한 콥트 기독교(이집트 지역의 기독교) 출신의 감독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까닭이다. ‘무슬람의 무지’라기보다‘영화 제작자의 무지’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창시자 마호멧에 대한 초상화나 이미지를 만들지 않을 정도로 그를 신성시하는데, 영화 제작자가 아주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한 것이다.

영화에서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멧은 음식을 탐하고 여색을 밝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유부녀나 젊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그래서 아내에게 신발로 두드려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슬림들이 보기에 매우 모욕적인 모습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를 성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동성애자로도 묘사된다. 게다가 이슬람권에서는 달갑게 여기지 않는 당나귀가 등장하고,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를 짜맞춘 종교라고 주장한다. 자기 할머니의 사지를 찢는 잔인한 인물로까지 묘사된다.

입장을 바꾸어 예수님을 이와 비슷하게 묘사했거나 기독교를 비하했다면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화가 났을 것이다. 사실 가치도 별로 없는 이 영화가 반미 시위를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은 코란을 불태우는 등 이슬람을 적극 반대하던 미국의 한 목회자가 동영상을 알리고, 반이슬람주의자들이 아랍어 자막을 넣은 다음부터이다. 불을 보고 껐으면 좋았으련만 그야말로 기름을 부은 격이니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는 사람들 같다.‘문명의 충돌’이라고 거창하게들 말하는데, 사실은 양쪽의 극단주의자들이 늘 문제이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며,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용서 Forgiveness’가 떠오른다. 팔레스타인 현지를 배경으로 유대인과 이슬람의 영토 분쟁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팔레스타인에게 자유를! 점령은 이제 그만!” 이라 외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위를 벌인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우리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6천 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았으니 유대인들이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무장하고 실제로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촬영을 하다 말고 넘어지는 모습 등 갈등의 현장이 긴장감을 더해 준다.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종교적인 반목에 뿌리를 둔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장면도 나온다. “예수를 부정하고 알라를 믿겠다!”라고 말하는 걸 거부한 사람이 구타당하는 실제 장면이 나오는데 그 믿음이 참으로 대단하다. 코란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로 처형당하거나 개종한 후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목을 베이기까지 한다.

이런 갈등의 현장에 예수님을 통한 사랑의 역사를 영화는 전한다. 100명 정도 되는 소수의 팔레스타인 크리스천들을 만난 것이다. 공개적으로는 믿을 수 없어 산 속 깊이 몰래 숨어 예배드리는 장면과 함께 영화는 여러 인터뷰들을 담았다.

이스라엘 군인이 자신의 가족을 죽였지만 그 군인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의 용서를 전하고 싶다는 팔레스타인 크리스천과의 감동적인 인터뷰. 할 수만 있으면 유대인들을 많이 죽이고 싶었는데 예수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마음이 바뀌었다는 사람과의 인터뷰. 예수님의 사랑은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간의 싸움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분쟁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의 인터뷰. 그리고, 예수님이 침 뱉음을 당하고 발로 차이기까지 했지만 저들이 하는 일을 몰라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하신 그 기도를 배우자는 Messianic Jew 목회자와의 인터뷰가 나온다. 

영화의 제목‘용서’는 바로 팔레스타인 크리스천들이 Messianic Jew 목회자들을 초청해 세족식을 하며 서로 용서하는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용서’는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과 Messianic Jew 사이의 갈등을 다룬‘회복 Restoration’의 후속편이다. UN이나 NGO 단체,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 한국인에 의해 예수님의 용서라는 관점에서 이슬람과의 갈등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다니,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보다 더 자랑스럽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에베소서 2:13-14).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라는 어느 복음송 가사처럼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갈등을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듯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라는 가사처럼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보혈만이 화해를 가능케 한다.

삶의 현장에서 오른편 뺨을 맞았더라도 맞서서 펀치를 되돌려 주고픈 마음을 꾹 참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라 생각해 본다.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가 머쓱해지고, 더 이상 싸움이 이어지지 않는 선순환의 삶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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