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짜리 교회(45)

 이제 오늘날의 개신교 예배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관습을 유기적 교회의 방해요소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다름아닌 설교입니다. 다른 요소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오늘날 설교는 교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회들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보통 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

만일 오늘날 교회의 예배에서 설교를 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이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다닌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다른 순서들은 설교의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에서 설교가 사라진다면 아마 출석률이 곤두박질치고 교회당이 텅텅 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프랭크 바이올라는 『이교에 물든 기독교』141-142페이지에서 현대 교회에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습니다.

“설교는 개신교 예배의식의 대들보와 같다. 지난 500년 동안 설교는 시계가 돌아가듯 규칙적인 역할을 했다. 주일 아침마다 목사는 강단에 올라가서, 의자를 덥히며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청중을 향해 인상적인 연설을 한다. 설교가 얼마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지,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것 때문에 교회를 다닌다. 사실 예배 전체가 종종 설교의 질에 따라 평가된다.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지난 주일 교회가 어땠는지 물어 보면, 거의 틀림 없이 설교에 관해 듣게 될 것이다. 요컨대 현대 기독교인의 사고방식은 대개 설교와 주일 아침 예배를 동일시한다. 그러나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설교를 없애 버리면 당신은 수많은 신자를 위한 영적 양식의 가장 중요한 밥줄을 끊어놓게 된다(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설교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현대 교회에는 거의 모든 모임에 설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뿐만 아니라, 주일 저녁 예배, 수요일 저녁 예배, 새벽 기도회, 구역 모임, 각종 헌신 예배에도 설교가 중심을 차지합니다. 또 심방때에도 설교는 빠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사들의 친목 모임에도 설교는 꼭 들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현대 교인들은 평생 수천, 수만 번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실로 설교 만능주의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설교 중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대 설교가 성경적인가?

그렇다면, 이런 현대 설교가 과연 성경적일까요? 오늘날의 교인들은 의심 없이 현대 설교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도 오늘날과 같이 예배를 했고, 또 그 예배의 중심에 설교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난 2천 년 동안 그것이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의 설교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을 것이라고 단정짓습니다. 이런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 교인들에게 현대 설교에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면 아마 참람하게 들릴 것입니다. 이단이라고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의 설교는 예수님이나 사도들, 또는 1세기의 사역자들이 메시지를 전했던 것과는 판이한,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은 설교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1세기의 지역교회들에서는 똑같은 사람이 매주 규칙적으로 수동적인 똑같은 청중을 향해 다듬어진 연설 형식, 그리고 일방적인 선포 형식의 설교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설교는 성경과는 거리가 먼, 한참 후에 등장한 이교에 뿌리를 둔 설교입니다.

현대 기독교 설교의 유래

현대 설교의 유래에 관해서는 이것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프랭크 바이올라로부터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은 그의 책 『이교에 물든 기독교』의 145-147페이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설교의 진원지를 찾으려면 우리는 소피스트(Sophists: 궤변론자)라고 불렸던 주전 5세기의 떠돌이 교사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피스트는 수사학(rhetoric: 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을 만들어낸 장본인들로 알려졌다. 그들은 제자들을 택했고, 또 그들이 하는 연설의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
소피스트는 전문적인 토론가였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팔기’ 위해 외모에 신경을 쓰고, 감정에 호소하고, 재치 있는 말을 구사하는 데 능했다. 머지않아 소피스트의 스타일과 형식과 연설 기술이 그들이 말하는 내용의 정확도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스타일을 위해 스타일을 개발하다’ 라는 강령을 내건 전문가 집단을 양산해냈다. 그들이 외친 진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실천된 진리가 아닌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그들은 실제적이 아닌 형식을 모방하는 데 있어 숙련된 달인이었다.

소피스트는 그들이 입는 특별한 옷으로 자신들을 식별했다. 그들중 어떤 사람들은 고정된 장소에서 똑같은 청중에게 정기적으로 연설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갈고 닦은 연설 기량을 과시했다(이렇게 해서 수입이 제법 짭짤했다). 때때로 그리스 연설가는 ‘이미 마련된 강단용 가운을 입고’ 그의 강연장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연설하기 전에 강단으로 올라가서 연설가 전용좌석에 앉았다…


약 1세기 후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는 세 개의 개요로 연설하는 것을 수사학에 가미시켰다. 그는 ‘전체가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라고 주장했다. 머지않아 그리스 연설가들은 그들의 연설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개요 원리를 접목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수사학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피스트에 대한 대우가 좋았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했을 때, 로마 사람들 또한 수사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누군가에 의한 유창한 연설을 듣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개발시켰다. 이것이 얼마나 유행했는지, 저녁식사 후에 전문 철학자에게서 ‘짧은 설교(sermonette)’를 듣는 것이 일종의 정기적인 엔터테인먼트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수사학을 가장 위대한 예술의 하나로 여겼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연설가들은 오늘날의 미국인들이 영화나 프로 스포츠 스타들을 떠받들 듯 아주 화려한 지위를 영위했다. 그들은 당대에 찬란하게 빛나는 스타들이었다.

연설가들은 단순히 그들의 탁월한 연설 능력만으로 청중을 열광시켰다. 당대의 첨단과학이었던 수사학의 교사들은 모든 주요 도시의 자존심이었다. 그 도시들이 낳은 연설가들에게 명사의 지위를 줬다. 요컨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교의 설교에 중독되어 있었다. 마치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독교’ 설교에 중독되어 있듯이.”


필자가 지난 40년 가까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설교와 목회자로서 수천 번 했던 설교를 종합해 볼 때 현대 설교의 뿌리가 성경이 아닌 그리스 수사학에 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와싱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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