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진 지음 / 한국소설가협회

‘... 사람도 죽기를 싫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다시 산다면 어찌어찌 하겠다고 아쉬워한다. 그러면 얼마나 살면 “이제 됐다” 하겠는가? 하나님이 300년을 살라고 특별은혜를 베푼다면 어떨까? 너무 끔찍하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필요는 없다. 다시 계획을 세워서 보람차게 살다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좀더 긴 시행착오나 실수의 과정을 똑같이 반복할 뿐, 80년 동안 살다 죽는 사람과 별 차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갓 80세를 넘긴 부친이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요즘 아들들은 아버지의 노환을 인식시킨다. “지금 돌아가셔도 한 점 아쉬움이 없으시긴 없는 연세시죠?” 병석에 누워 있는 777세의 라멕에게 595살 먹은 아들내미 노아는 뭐라고 했을까? “안 되죠, 아버님. 돌아가시다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시퍼렇게 젊으신 아버님이, 할아버지 올해 나이만큼만 사신다 해도 강산이 19번이나 더 바뀌어야 될 세월입니다. 아직 젊디젊으신 아버님이 마음 약해지시면 안 되죠.”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고 하셨다. 거기서는 100살 되신 분이 귀여운 아이이고, 99살에 돌아가신 분은 저주받은 것으로 취급된다고 했다. 사람들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다고 하니, 천 년은 거뜬히 살 것이다. 천 살 된 분은 혜성이 소련을 치고 가는 것도 보았으며, 개기일식을 수십 번씩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할 것이다. 아마 그 땅에서는 바빠서 뛰는 자가 없고, 과속하는 운전수도 없을 것이다. 100m 달리기 경주 후, 1분 후에 두 번 숨 쉬는 선수는 방정맞다고 신문에 날 것이다. 얼핏 무척 좋겠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인생의 행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길게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서두름쟁이 참새도 있다. 몇 시간 동안 제 볼 일 다 보고, 다음 세대를 위한 뒷정리까지 깨끗이 하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칵 죽는 하루살이가 있다. 수백 년을 늘쩡늘쩡 살다가, “화살 같은 세월이여~~” 한탄하며, 슬그머니 죽어가는 거북이도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고, 그 중간인 우리들의 인생은 아무런 불평의 여지가 없다.’(수필 천 년과 하루 일부)
본지에 수필을 여러 번 기고해 주시기도 했던 정종진님의 첫 작품집들이 지난 여름 출간되었다. 이민 1세대로서 바라본 이민자들과 이민의 삶을 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와 수필집 『여름겨울없이 추운 사나이』에 담았다. 출판기념회는 10월 28일 오후 5시 시카고한인문인회관에서 가진다. 저자는 2007년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문단에 정식 데뷔했으며, 시카고문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미주문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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