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숙 사모(올랜도충현장로교회)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나는 정말 많은 잘못을 했다. 크고 작은 잘못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한 것,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지 않은 것 등 수도 없이 많다. 하나님께는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때로는 내 자신에게 많은 잘못을 하면서 살았다.
로마서 3장 10절에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말씀한 것처럼, 이 세상에 의인은 한 명도 없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게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담당해 주셨고, 내가 지불해야 하는 죄값도 다 지불해 주셨다. 내가 내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죄인인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덮인 나를 보시고 나를 의인으로 보아 주시는 것이니, 이 얼마나 큰 사랑이며, 큰 은혜인가! 나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를 그렇게 보아 주시니 우리 크리스천들은 정말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건만, 내가 그러지 못한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셀 수 없이 많은 사례들이 내 삶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조금씩 성숙해지고, 삶의 현장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내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되새김질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한 적도 꽤 많다.
특히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싫어했다.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미워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때는 사춘기였고, 신앙이 성숙하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 일은 오랫동안 내게는 큰 짐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미워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충분하고도 남는 이유들이 많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예수님 믿고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버지께서는 엄마를 많이 괴롭히셨다. 그 일들을 다 기록하면 책을 써도 몇 권은 될 것이다. 엄마는 심한 말들로 학대(verbal abuse)를 당하셨다. 심한 행동들로 학대(physical abuse)를 당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미워서 얼굴도 보기 싫었다. 말도 하기 싫었다. 한 방에 같이 있는 것도 싫었고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것도 싫었다. 엄마한테 야단을 맞으면서도 나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우리 아버지를 회개시켜 주세요. 예수님 믿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수없이 했고, 때로는 진심으로 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실은 내가 편하고 싶어서, 그런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기도할 때도 많았을 것이다.  보통 때는 점잖고 예의도 있으시며, 똑똑하시고, 동네 사람들 아프다 하면 다 돌보아 주시는 분이 술만 드시면 엄마를 핍박하고 괴롭히셨다. 때로는 우리 아버지일지라도 엄마와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는 것이 더 마땅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마음이어서였을까.
마음속  갈등은 많았지만, 나는 여전히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다. 서울에서 숙명여대에 다닐 때는 창경원 옆에 있는 원남교회에 다녔다. 성가대에서 봉사도 하고 주일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효창동 2층의 자취방에서 주일에 가르칠 교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침 그 주일의 성경공부 내용은 ‘주기도문’이었다. 공과책과 성경을 펴놓고 준비를 하는데 주기도문 중에 있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부분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그리고 마치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하여 공과 준비를 더 할 수 없었다.
누구든지 우리에게(나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다 용서해 주고, 그런 다음 하나님께 가서 우리의 죄(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내용인데, 그 대목에서 딱 걸려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나는 책상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공과책과 성경을 펴 놓은 채… 그리고 궁리를 했다. 주일학교 교장이신 박 장로님께 전화해서 내일 일찍 시골에 내려 간다고 할까? 아니면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거짓말하기는 싫었다. 다만 마음속에서 미워하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서, 천진난만한 5학년 학생들에게 주기도문의 그 내용을 가르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마음에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서 아버지를 진심으로 용서해야 한다는 강한 도전을 주셨다. 그날 밤 결국 나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비록 아버지는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당신이 하신 일들에 대해 잘못했다면서 용서해 달라 하지 않으셨지만, 모두 다 용서한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죄 또한 회개하였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상황이었지만, 신기한 것은 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인가 크고 무거운 짐이 내 등에서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고, 주 안에서 진정한 사죄의 은총과 자유함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아버지는 엄마를 핍박하셨고 많은 잘못을 하셨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아버지를 계속 용서할 수 있었고 진심으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다.  엄마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용서하시면서 사셨다. 아마도 그 힘은 어머니의 새벽기도에서 얻으시는 매일의 은혜였던 것 같다. 날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엄마에게 사랑할 수 있는 힘, 용서할 수 있는 힘, 핍박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신 것이다.
결국 그로 인해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놀라우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내가 축복을 계속 받도록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주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잘못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할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것은 계속, 계속, 계속 용서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날 그 토요일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내 삶의 현장에서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 것이 기적이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능력을 계속 부어 주시는 것이 기적이다.
하나님, thank you! 
And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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