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아버지께서 그림 그리시는 걸 알고 있었어?”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던 오후에 막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축 처져 있던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라 어리벙벙해 있는 내게 막내는 기회를 주지 않고 들떠서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91세의 아버지께서 지금껏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무언가를 그리실 수 있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막내가 나를 놀리려고 부러 하는 말로 듣고는 더워서 힘든 사람한테 장난치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동생은 헛기침으로 자신을 진정시키며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잠깐 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거기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고 했다. 연필로 정성스럽고 세밀하게 그리신 네 점의 눈에 익은 시골풍경 아래에는 ‘내 고향의 여름날 오후’와 우리 9남매가 모두 다녔던 길인 ‘학교 가는 길’등의 제목과 아버지의 성함이 쓰여 있어 눈을 의심하며 여쭈어 보니 아버지께서 손수 그리신 것이 맞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누나가 가족들 중에서 아버지의 근황을 제일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물어 보는 것이라 했다.

아홉 남매를 두신 우리 아버지, 큰언니는 한국에 있고, 아버지께서 계시는 시카고 근교에 살고 있는 일곱 자녀들은 돌아가며 한 주씩 아버지를 찾아가 뵙고 음식이나 필요하신 것을 충족시켜 드린다. 비행기로 네 시간 거리인 여기 캘리포니아에 떨어져 사는 나는 자주 가 뵐 수 없어서 날마다 전화를 거는 일을 맡았다. 당연히 아버지의 동향은 물론 마음까지도 제일 많이 알고 있다고 여기기에 가족 중 누구나  궁금한 일이 있을 때 내게 전화하는 것은 당연했다.

막내도 아버지께서 그림 그리시는 일에 대해 너무 놀란 나머지 연락을 한 것이었다. 기뻐하며 놀라는 나를 위하여 바로 그림 한 점을 전화로 찍어 보냈으니 열어 보라고 했다. 내 작은 전화기의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시골집의 뒤란인 듯했다. 연필로 섬세함과 농담을 잘도 표현하셨다. 정갈한 초가지붕의 곳간과 담 밑으로 장독들이 열을 지어 있는 장독대, 그 주위의 화초 몇 그루. 다리가 성치 않으셔서 한 발짝 옮기기도 버거워하시는 분이 그 고단한 몸으로 도대체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셨을까?

찾아가 뵐 때마다 눈에 띄게 몸이 쇠약해져 가신다. 하루 이틀 같이 있다 보면 불편하신 무릎에무통연고를 조심스레 바르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퉁퉁 붓는 부위를 들여다 보기가 민망해지고 가슴이 아프다가 간혹 슬퍼하는 기색을 아버지께 들키기라도 하면, 사람 살아가는 과정의 일부를 그리 힘들어 하면 어찌 살아갈 거냐고 도리어 세월이 만들어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를 걱정하셨다.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이 어려움도 아픔도 걱정도 그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일까?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서럽고, 원통하고, 화가 났을 일도 아버지께서 묵묵히 견디시는 것을 볼 때마다, 성숙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비단 나쁜 일뿐만 아니라 발을 동동 구를 만큼 기뻤던 환희의 순간도 시간 속에서는 희석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마음이야말로 세월이 건네 준 큰 선물인 듯했다.

어항 속같이 고요한 아버지의 생활이 조용하고 평화롭기보다는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우실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주님이 계셔서 희망이 살아나는 방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 기도하면서도 90이 넘으신 노인이 계신 그 방에 희망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저 주님을 묵상하는 기쁨이나 허락하시면 좋겠다는 속 좁은 바람이었다.

그러나 내 계산과 생각을 뛰어넘어서 주님께서 하신 일은 아직 총명하신 머리로 생각을 모아  그림 그리는 일을 허락하신 것이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초보자의 솜씨, 바로 그것일지라도, 90대에 뭔가를 시작할 수 있고 마음과 정성을 쏟을 일을 찾으신 아버지가 자랑스럽기만 했다. 돋보기 밀어 올려가며 떨리는 손으로 한 줄 한 줄 그리셨을 전화기 속의 그림을 검지 끝으로 가만히 쓸어 보았다.

그림 그리실 생각은 어찌 하셨는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인자(이젠) 바깥출입도 할 수 없고 꽉 들어 앉아 버렸지 않냐. 그래 마음이라도 돌아 다녀야제야. 약 두 달 정도 걸려서 네 개를 그려 봤다.” 아버지의 마음은 고향을 서성이고 계셨다. 그림에 몰두하시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다리의 통증도 잠시 잊곤 하신다는 아버지. 열심히 연습하셔서 시편 23편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셨다는 자랑스러운 우리 아버지, 희망이 끌어내 주는 힘으로 고단함도, 아픔도, 외로움도 잊으시고 천국 같은 방을 만들며 살아가시기를 바랄 뿐이다. 떨리는 그 손을 하나님께서 잡아 주셔서 오늘도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실 그 방에서 벌써 천국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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