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철인 이곳 서북미 지역에 시도 때도 없이 질척거리며 대지를 할퀴어 놓고 비구름이 잠시 물러간 사이, 떨고 있는 대지를 암탉이 새끼 병아리 품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없는 겨울 태양이 어루만지고 있다. 잠시 태양이 머무는 틈을 타서 돼지감자 수확을 하게 되었다.

유난히 무덥고 가물었던 지난 여름의 긴 꼬리가 걷히니,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모질게 시집살이 했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더욱 심하게 다루듯이, 이번 겨울은 길고 추운 날씨가 위세를 떨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난해부터 카운티에서 유휴지를 개간하여 분양하는 곳을 통하여 한 필지를 제공받아 경작을 하는데, 몇 그루의 돼지감자 싹이 돋아나오는 것을 그냥 키웠다. 11월 중순까지는 모든 농작물 추수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가을걷이를 하다가 2m 이상 자란 돼지감자를 뽑으니 토실토실하게 알알이 맺힌 감자가 20여 개씩 매달려 나온다. 어려서 고향에서 자랄 때 노란 꽃이 피는 돼지감자를 캐어 돼지를 준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직접 캐보지는 않았다. 들판 후미진 언덕이나 개울가, 텃밭 귀퉁이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해바라기처럼 노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대던, 그냥 잡초같이 여기던 식물이었다. 

몇 년 전에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안면이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기가 당뇨를 앓았는데 돼지감자를 먹고 나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서 듣고 흘려 버렸다. 이번에는 몇 포기 캐지 않았는데도 굵고 잘잘하게 다양한 10파운드가 넘는 감자에 호기심이 생겨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돼지감자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며 미국을 중심으로 북미가 원산지라고 한다. 번식력이 얼마나 강한지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식물이 연구 결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식물보다 엄청난 이눌린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이눌린은 위에서 소화되지 않고 장으로 내려가며 혈당치를 상승시키지 않고 인슐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췌장을 쉬게 할 수 있어 천연인슐린이라고 하고, 특히 당뇨환자에게는 귀중한 약재가 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당뇨환자를 찾아 보기 힘든 지역으로 알려진 예루살렘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에루살렘 꽃”이라고 하는 식물의 뿌리를 식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돼지감자의 영어 이름이 바로 “Jerusalem Artichok”이다.

돼지감자의 놀라운 효능은 정말 다양하다. 주성분인 이눌린이 위액으로는 분해되지 않고 장으로 내려가서 체지방을 분해하여 다이어트 식품으로 쓰이고, 장을 정상화시켜 변비를 없애 주고, 어린이의 뼈 성장을 촉진시켜 주고, 관절을 튼튼하게 해주고,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고, 해열작용을 하며, 당뇨환자를 완치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금년에는 밭에다 재배를 시작했다. 유난히도 무덥고 길고 메마른 여름을 지나면서 2-3일에 한차례씩 물을 주면서 정성껏 가꾸었다. 4월 말경 한국 방문을 하고 돌아와서 5월 중순이 넘어서 심었더니 조금 늦은 것 같다. 여름에는 부지런히 자라서 가을에 제일 윗부분에 노란 꽃을 피우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토실토실 열매를 키워서 땅속에 묻어 놓는다. 이눌린 성분이 많아서인지 겨울에 얼지도 않는 특이한 식물이다. 다음해 봄에 새로운 싹이 돋아나면 서서히 썩어서 밑거름이 되어 주는 식물이다,

얼마나 번식력이 강한지 마구 뻗어나가 엉뚱한 곳에서 새싹이 돋아나기도 하여 밭을 버린다고 해서 뚱딴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생김새는 생강이나 토란 같기도 하고,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똑같은 모양이 별로 없이 엉뚱하게 생겨서 뚱딴지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행동이 엉뚱한 사람을 가리켜 뚱딴지 같다고 하지 않는가?

옛날에는 돼지나 먹는 식물이라고 천대를 받았는데, 많은 효능이 밝혀지고 귀한 몸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니 역시 뚱딴지가 틀림없는가보다.
힘껏 잡아 뽑으니 크고 작은 20여 개의 열매들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호미로 살살 헤집으면 그야말로 엉뚱한 곳에 굵직한 열매가 묻혀 있다. 수확을 하면서 허리가 아파 몇 차례 일어나 쉬었다 해도 너무나 즐겁다. 두어 시간 흘린 땀의 보람이 있어 풍성한 수확을 했다.

모든 사물이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 쓸모가 있게 창조하신 것 같다. 돼지감자가 꼭 필요한 누군가를 위하여 보관하고, 일부는 잘 씻어서 두유를 넣고 믹서로 갈아준 후 약간의 꿀을 넣고 마시면 고소하고 먹기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의 진가를 찾아내는 보물찾기를 하여 꼭 필요한 사람들과 서로 나누며 도움을 주고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은혜가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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