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코스를 바꿨다. 같은 지역이지만 골목만 바꿔서 걸어 보았다. 집주인의 개성에 따라 뜰을 가꾸어 놓은 솜씨들이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주어 지루한 줄 몰랐다. 두어 골목을 누비다가 반가운 나무를 보았다. 고향을 떠나온 30여 년만에 바로 코앞에서 바람 따라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가만히 흔들리고 있는 대나무를 본 것이다. 그 순간 고향의 풍경이 떠올라  한동안 그곳에서 발걸음을 떼어 놓기가 어려웠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인지라 이곳에서도 잘 자랄 수 있겠지만, 정원수로 대나무를 심은 집이 그리 흔치 않았다. 제법 아이의 팔목 만한 굵기의 대나무가 판자 담장의 끝부분에서 집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자란 마을에는 대나무로 담을 대신한 집이 더러 있었다.  그 시절에 대나무는 유용하게 쓰였다. 쉽게  볼 수 있었던, 얇게 쪼개어 마름모로 성글게 엮어 만든 초가집 문창살,  대나무 바구니, 쉽게 쓸 수 있는  가구 등을 만들 수 있었기에 유용한 나무였다. 특히 부엌 찬장의 밑바닥은 꼭 대나무를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둥굴둥굴한 면이 공간을 만들어 씻어서 얹어 놓은 그릇 속으로 공기가 통했을 터이고, 매끄러운 표면이 물기를 빨아들이질 않아 다른 나무들처럼 습기에 부풀어 오르질 않았기에 딱 알맞은 재료였던 것이다. 명창이 손에 들고 무릎을 쳐서 오므렸다가 한 손으로 좌악 펴면서 창의 흥을 돋우던 합죽선 또한 대나무 작품이다. 그 옛날 더위를 식히느라 주로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죽침과 죽부인도 있다. 대청 문앞에 드리워진, 가늘게 쪼갠 댓개비로 만든 발은 햇빛을 가리고 밖으로부터 집안 풍경을 가려 주어, 사대부집 여인들이 더운 여름에 문을 열어 놓을 수 있었다. 발이 드리워진 방문 앞의  운치는 한 세기 전 우리 조상들의  여름 멋으로 빼놓을 수없는 것들 중의 하나였다. 

실생활의 쓰임새뿐 아니라  선비들의 지극한 사랑으로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라는 칭호를 받아가며 붓끝에서 많은 그림과 시로 태어났음은 물론이다.

대나무 번식에 대한 것중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대나무 훔치는 법이라면서  들었는데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버렸다. 옆집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을 경우, 울타리 너머의 이쪽 땅에 퇴비를 깔고 가마니로 땅을 덮어 그 위에 수시로 물을 뿌려 대나무가 좋아하는 양분과 습기, 알맞은 빛을 공급해 주면 땅속의 뿌리가 차츰 옮겨져서, 시치미를 떼고 있어도 결국은 옆집의 대나무를 끌어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퍽 어릴 적 이야기인데도 지금까지 기억을 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꾸만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오는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따갑고 눈부신 빛 때문에 힘들어 할 때 조용히 다가가서 큼직한 우산으로 빛을 가려 주고, 아프고 어려운 사람에게 위로의 마음 한 폭 들고 가서 편히 마음을 부려놓을 수 있도록 자리를 펴 주고, 헐벗고 배고파하는 자에게 생색내지 않고 욕구를 채워 준다면 마음을 바로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각박한 세상에서 외롭지 않고 어렵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서로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외로움에서 헤어 나오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랑을 만들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자도 없고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부자도 없다고 한다. 지금 허전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이웃을 향해 주님이 준비해 주신 사랑을 들고 나가서 이웃에게 자리를 펴주어야겠다. 마음과 마음이 합해지면 외로움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며  그 자리에 주님의 사랑이 들어설 것이다. 풍성하게 자란 대나무가 유용하게 쓰이듯이, 이웃과 내가 만든 사랑이 많은 이들에게 큰 유익을 주어 더욱 큰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곧 전도자의 마음이 그것이리라.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