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나서 40불이라는 돈이 주는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좁은 통로에 끝임 없이 줄지어 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손에 묵직한 가방들을 들고 선반의 빈 자리를 찾으면서 들어서고 있는 것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 여행에 불편한 것이 많아졌다. 철저한 보안 관리로 인하여 사람의 진을 빼놓는 검사와 맞서서 여행객들의 필수품인 짐에 대한 인심이 옛날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야박하기만 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고, 항공사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이제는 쾌적하고 안락한 비행기 여행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전에는 단거리 여행일지라도 50파운드 이하의 짐 두개는 누구나 무료로 부칠 수 있었고, 비행기 안으로는 간단한 소지품을 담을 수 있는 손가방 하나면 충분하기에 편리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일 년에 서너 차례 이용하는 항공사의 경우, 부치는 짐들은 도착 후 한참을 걸어서 짐 찾는 곳까지 간 다음 기다려서 찾아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요, 모두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탑승할 때 가져갈 수 있는 짐은 손으로 들 수 있는 가방 두 개가 허용된다.

누구나 어려운 이 시기에 웬만하면 돈을 내고 부치는 대신에 항공사에서 허용하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큰 손가방을 두 개씩 들고 타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연로하신 아버지를 뵈러 가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다보면 고작 하루이틀의 짧은 일정이지만 짐이 많다. 얼리고 물기가 있어 젖은 음식도 잘 포장하여 한 가방에 챙겨야 하는 사정이라서 힘에 버거울 만큼 무거웠다.

그런 사정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탑승게이트에 가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끌고 기다리고 있다. 자연히 비행기 안의 짐 넣는 선반은 한 치의 여백도 없이 빼곡하게 차버린다.
탑승순서가 늦어지면 더욱 곤란을 겪어야만 한다. 지난 번 같은 경우에 늦게 표를 산 탓에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비행기에도 맨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등받이를 뒤로 젖힐 공간이 조금도 없는 벽에 직각으로 펴진 뒷좌석에 앉은 나는 큰 짐 두 개를 이미 가득 채워진 선반 위에 얹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가방 하나는 앞자리 의자 밑으로 겨우 밀어 넣고, 또 하나는 내 다리 밑 공간에 넣었다.

4시간 동안  벌 받는 아이처럼 꼿꼿하게 앉아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넘게 몸살에 시달렸다. 
전에는 1등석이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여행을 사치요 낭비라고 생각했다. 불편했던 여행의 뒤풀이로 끙끙 앓으면서, 레드 카펫이 깔린 곳에서 기다리다가 탑승서열 1위, 비행기 앞부분을 차지한 넓은 의자에서 거의 드러눕듯 편안한 자세, 마음껏 골라서 볼 수 있는 영화, 음료수와 음식 제공은 물론이요 시시각각 승무원들의 시중을 받으며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멀리 있는 딸을 기다리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한달음에 달려가야 할 여행이었다. 그런 고급 자리는 꿈에서도 살 처지가 아닌지라 고생할 생각이 자꾸만 주저하게 했다.

며칠 뒤, 기뻐하실 아버지의 얼굴만 생각하기로 하고 큰 숨을 한 번 쉬곤 인터넷에서 표를 구했다. 자리를 정하느라 배열된 자리를 보는데 비즈니스 석 바로 뒤에 있는 이코노믹석 서너 줄에는 남은 좌석이 많았다. 고개를 갸웃하고 마우스를 가져가 보니 창가는 50불, 통로쪽의 자리는 40불, 가운데는 30불 정도를 더 내라는 표시가 나왔다. 이 자리가 바로 보통 자리보다 6인치 여유가 더 있다는 이코노믹 플러스라는 자리였다. 내 형편에 웃돈을 주며 표를 산다는 것은 좀 사치다 싶었지만, 몸살보다는 나을 듯하여 눈 딱 감고 통로쪽 자리를 40불 더 주고 샀다. 예상대로 탑승도 먼저 할 수 있었다. 가방 하나를 선반에 얹고 또 크고 묵직한 가방은 의자 밑으로 넣었다. 그래도 편했다. 작은 공간에서 고작 6인치의 여유 공간이 표 나게 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으니 잠시 기도한 다음 다른 탑승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줄로 연달아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주체하기 힘든 짐을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난 느긋한 마음으로 싱글대면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돈이 주는 편리함에 의존하기보다는 몸으로 때우는 일을 잘하는 편이였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자존심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말을 했다. ‘돈으로 누리는 호사는 유치한 거야. 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난 불편한 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워’

그날은 40불로 인하여 자존심이 정한 유치한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돈맛을 즐기고 있었다.
한참을 싱글거리며 구경을 하던 나는 눈을 찔끔 감고 말았다. 선반의 빈 자리를 찾느라 눈을 위로 치켜뜬 채 들어오는 허연 머리의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불편하게도 다리를 몹시 절뚝거리면서 한 발 한 발 떼어 놓는 그 노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내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40불의 편안한 돈맛 속에 이런 부끄러움이 함께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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