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stry Philosophy 3

 “경직아, 네가 있으면 주위가 따스해지는구나. 어린 아이가 이토록 많은 사람에게 따스함을 전하다니. 그래, 넌 마치 서늘함이 느껴지는 가을녘, 그 가운데 따스하게 비추는 가을 햇볕 같은 아이다.” 중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한경직 목사의 호 ‘秋陽’(가을 추, 햇볕 양)의 유래를 말해 주는 이야기로 목사님의 목회와 삶이 한 마디로 잘 나타나 있다.
목회자로 부름받은 이는 누구나 안수 서약을 하고, 개인적인 목회 철학을 가지고 목회에 임한다. 오늘 세번째 시리즈 글에서는 서약과 철학을 삶으로 보여 준 한경직 목사의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샘터, 한경직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엮음)를 나누고자 한다. 본인 스스로 자신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자서전들은 많지만,  돌아가신 후 여러 지인들이 그분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이 책은‘목회자의 삶은 이러해야 하는구나!’하는 교훈과 넘치는 감동을 준다.

실패한 직업목회자, 보여 주는 설교

“...그분은 ‘보여 주는 설교’의 달인이었다. 적빈했던 그분의 삶 자체가 눈에 보이는 설교였고, 그분의 순수한 일상이 곧 복음의 걸음걸음이었으며, 그분의 진솔한 참회는 회개와 용서의 모범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그분의 빈 자리는 충만한 은총의 자리, 바로 그것이었다. 말로 들려 주는 산상수훈들은 차고 넘치는데 삶으로 보여 주는 산상수훈은 어디에서고 찾을 길 없는 오늘 이 땅에서, 내가 한경직이라는 실패한 목회자를 다시금 애타게 찾고 그리워하는 이유이다.” (92쪽)

흔히 ‘목회를 잘하기 위해 설교를 잘해야 한다’ 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설교. 1주일에 한 번 주일 예배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는 말씀을 전했을 뿐 아니라, 말씀을 삶으로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또, ‘실패한 직업목회자’란 말은 목회의 성공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고, 아들 목사에게 물려 주지도 않았으며, 말년을 산꼭대기 허름한 집에서 보내었으니 ‘바보 목사님’이요 직업적으로 실패했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있니? 줬지! - 아름다운 빈 손

“...때로 섭섭하게 하신 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검소한 양복이 나름대로 마음에 걸려 내심 크게 마음먹고 해드리면 절대 ‘두 번 이상 입으시는 법’이 없다는 거다. 한 번, 두 번까지는 입으셨다. 그리고 ‘고마워, 내 이런 거 입을 자격 없는데, 고마워.’ 하시며 해드린 정성에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얼마 후 다시 초라한 양복을 꺼내 입으셨다. 그래서 하루는 따님께 물어봤다.  “지난번에 해드렸던 거 입으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그랬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그게 있니? 벌써 줬지!” “네에?” 그랬다. 그 멋진 최고급의 옷들은 벌써 모두 헐벗은 이웃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45쪽)
선물을 해드렸는데 오래 가지 않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더라는 이야기가 여러 지인들의 회고에서 반복적으로 나온다. 어떤 분은 기도할 때 추울까봐 오리털 파카를 선물해 드렸다. 예배 후 교회 근처 백병원을 지나는데 평소 구걸하던 시각장애인이 여느 날과 달라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한 목사님에게 선물한 것과 똑같은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었다. 한 목사가 옷을 그분에게 준 것이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기 위해 출국하던 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동행하는 분들이 전에 입었던 윗저고리를 이미 누군가에게 준 것을 그제서야 발견하고 백화점에 급하게 들러 양복을 마련해 공항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한 목사 자신은 벗을지라도 옆에 있는 사람을 먼저 챙겨 준 분이었고, “그게 어떤 돈인데, 교인들이 그 어렵게 모아 낸 귀한 헌금을 어떻게 나를 위해 쓰나? 안 돼. 이대로 좋아, 참 좋아.”(40쪽) 하며 가구 하나 바꾸지 않으려 했다. ‘검소하다 못해 가난하게 사셨던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물질이 풍족한 이 시대에 ‘아름다운 빈 손’인 그분을 따르기가 너무 힘들다. 솔직히, ‘왜 이리 기준을 높여 놓으셨어요?’라고  원망의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나는 죄인입니다

“한 목사님은 1992년 4월 29일 전세계 미디어들이 실황 중계하는 독일 베를린의 템플턴상 수상 이후 영락교회 주최로 열린 축하연회에서 다음과 같이 참회의 고백을 말씀하셨다.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이런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한국 교회를 위해 일하라고 이 상을 주셨습니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하루는 교계의 원로 중진 목사님들이 남한산성에 한 목사님을 병문안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즈음 목사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한 목사님, 모처럼 이렇게 교계 중진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좋은 말씀 한 마디 해주세요.” 잠시 후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목사님은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순간 한 목사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을 들은 교계의 원로 중진 목사님들은 당황했다.”(87쪽)

한 목사는 목회의 업적, 종교적인 의를 이루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도 한 사람의 죄인임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목회하라는 말씀으로 받는다. 나의 학식, 지혜와 능력으로 목회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님은 뒤로 물러나시고 내가 주인이 되어 앞선다. ‘그저 죄인된 나를 부르시고, 주의 몸된 교회를 하나님이 맡겨 주셨구나!’하는 마음으로 목회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그래서인가?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이 한 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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