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 꽤 큰 교회가 있다. 그 교회에는 건물 뒤쪽으로 키가 큰 나무들과 숲이 우거진 넓은 땅이 있다. 그곳에서 해마다 12월이면 성탄절 축하 행사 중 하나로 “베들레헴 여정”이라는 성극을 공연한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감사와 기쁨으로 성탄을 축하하고 함께 축복을 나누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온 교회 성도들이 힘을 모아 정성껏 준비한다고 한다. 성탄절을 2.3주 앞두고 초대장이 나가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원근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극을 보기 위해 몰려온다.

우리 교회의 소그룹 성도님들과 함께 하루 저녁 시간을 내어 성극을 보러 갔다. 시작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도 주차장은 벌써 만원이었다. 안내하는 분의 지시에 따라 그 교회의 옆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밖에서 한 시반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에야 교회의 본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 성탄에 관한 성경 말씀을 읽고 찬양을 하고, 그 동안 열심히 준비했을, 짤막한 단막극을 보여 주었다.

그런 다음 교회 뒤 숲속에 준비된 성극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밖은 캄캄했다. 알고보니 우리들은 그냥 관람객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도 극중의 일원이 되어 그 성극에 직접 참여한다는 거였다. 우리는 그 당시 로마제국의 지시에 따라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호적하러 가던 유대인 행렬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는 시므온 지파 자손 중의 한 가족이 되었다. 베들레헴까지의 여행을 허락하는 통행증도 받았다. 자동차가 있을 리 없었으니, 우리도 춥고 먼 길을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목마다 통행증을 내보이라는 로마 병정들의 거친 말투와 기세등등한 태도에 힘없는 유대인 여행객들이 겁을 먹기도 했다. 어느덧 하루 해가 저물고 모두 피곤에 지쳐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아름다운 찬양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하늘 위에 유난히 밝은 빛을 발하는 큰 별이 보였다.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아기 예수의 탄생을 전해 준 바로 그때인 것 같았다. 이어서 수많은 천군천사들의 장엄한 찬양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온 천지에 울려퍼졌다고 성경이 말씀하는 바로 그때였다.

우리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떠들썩한 베들레헴의 밤 풍경이 이채로웠다. 여관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와 이곳저곳에서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소란스러운 베들레헴의 시가지를 지나고, 근처에 있는 한 마구간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구간 안팎에는 짐승들이 있었다. 큰 별 하나가 초라한 그 마구간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갓 태어난 듯한 아기가 말 구유 안에 누워 있다. 방금 해산한 아기의 어머니와 남편이 아기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였다. 짐승들도 입을 다물었고 사방이 고요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구간 앞을 지나쳐 갔겠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젊은 부부와 갓 태어난 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그런 장면이었다. 그저 한 젊은 부부가 노중에 방을 구하지 못해 마굿간에서 해산했다고만 생각했을 그런 딱한 모습이었다. 아내의 해산을 위해 하룻밤 묵어갈 따뜻한 방조차 구할 수 없었던 가난한 남편을을 향해 혀를 끌끌 차며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동물들이 내뿜는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말들이 먹는 건초 위에 누우신 아기 예수는 세상의 모든 어수선함을 제압하신 듯 평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 아기가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하기 위해 보내 주신 사랑의 구세주임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요한 3:16).

오직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만이 천사가 전해 준 엄청난 소식을 믿었다. 그리고 단숨에 베들레헴으로 달려와 가장 먼저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던 유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았다. 모두들 숙연한 가운데 베들레헴 여정은 끝났다.

환하고 아늑한 방에 네 명의 작은 아이들이 각기 장난감과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잠시 후에 엄마와 아빠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 잘 시간인 모양이다. 엄마가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정신없이 놀던 아이들이 장난감을 놓아두고 엄마와 아빠 곁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먼저 흔들의자에 앉아 막내인 듯한 제일 작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 다음으로 작은 아이는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았다. 나머지 두 아이는 각각 엄마와 아빠 곁에 서있었다.

잠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인 듯했다. 엄마가 성경책을 펴들고 큰 소리로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된 아기 예수의 탄생에 관한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을 읽던 엄마가 잠시 멈추고 아빠에게 나머지 부분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자신의 무릎 위에서 잠든 막내 아이를 침대 위에 눕혔다. 아빠도 나머지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도록 도와 주었다. 아빠는 아이들의 침대 곁에서 밤새 아이들을 지켜 달라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불을 여며 주고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전등 스위치를 끄고 방문을 닫으며 아빠와 엄마는 사랑의 눈길을 보내며“굿 나잇” 하고 밤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연극은 막을 내렸다.

그런데 그 단막극이,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코믹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연극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래 전 내가 아이를 키울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들을 향한 참사랑을 그 단막극에서 보았다. 젊은 부부의 지혜와 열정이 무척 무러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세워 주는 부모, 그래서 그들의 장래를 튼튼한 반석 위에 세워 주는 지혜로운 부모의 사랑을 연출하고 보여 준 극중 모든 분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쳐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내 아이가 내 품에 머물러 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라는 것을 아이가 집을 떠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머지 않아 사랑하는 아이들이 부모의 간섭이 미치기 힘든 곳으로 떠나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들이 어디에서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그때를 대비해서 어릴 때에 하나님 말씀으로 그들의 장래를 준비해 주는 것이 지혜로운 부모의 책임일 것이다. 내게 잠시 맡겨진 하나님의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로 부지런히 키워가는 젊은 부모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점점 밝아지리라 믿는다.

이런 가정을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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