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방망이

깊어가는 여름 밤.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무수한 별들의 향연이 벌어지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서 이웃집 할아버지가 펼쳐놓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이 5-60년 전 개구쟁이들에게는 가장 흥미진진한 오락이요 즐거움이었다. 대여섯 채 초가지붕이 사이좋게 이마를 맞대고 살아가던 고향 마을이었다. 긴긴 여름날 무더위에 지치고 곤한 몸을 헐떡이며 서산 넘어 태양이 기울면, 무더운 뙤약볕 아래서 농사일을 끝낸 농부들이 돌아온다. 저녁 식사 후 전깃불도 아직 찾아오지 않았던 두메산골, 호롱불을 밝히고 마당 한쪽에 젖은 풀과 쑥을 한 아름 모아 놓고 모깃불을 피워놓으면 우리 마당으로 이웃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커다란 멍석 몇 장 깔아 놓고 둘러앉아 남자 어른들은 품앗이 순번을 정하기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낙네들은 삼베나 모시를 가지고 와서 길쌈하며 가난했던 시절의 애환을 날리기도 했다.

개구쟁이 우리들이 서당 훈장 할아버지를 졸라서 옛날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는 날은 최고로 즐겁고 흥미진진한 밤이 되기도 했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들어도 들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며 울고 웃다가 무서워서 베 홑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기도 하면서 좋아했다. 그때 가장 흥미로웠던 단골 이야기가 도깨비 방망이였다. 무엇이나 필요한 것을 달라고 뚝딱하면 즉시 대령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가질 수 있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달라고 할까? 상상만 해도 신났다. 세월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새 아련한 추억들이 하얗게 내 머리에 눌러앉았다.

미국에서 신랑감을 찾으러 나온 아가씨와 데이트 한 번 못해 보고 얼결에 결혼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은 지 어언 35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낯선 땅에서 입이 얼어붙고, 귀는 막히고, 동서남북도 분간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nobody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 하고 돌아온 아내를 위하여 따뜻한 밥 한 그릇 준비하였다가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시작한 음식 만들기가 나의 취미가 되고 기쁨이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처음 신혼생활을 할 때 내가 고향에서 어릴 적 천렵을 하며 냇가에서 끓여먹던 민물매운탕에 국수를 넣고 어죽을 쑤었다. 바닷가 항구도시에서 자란 아내가 하는 말이 자신이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생선으로 죽을 쑨다는 말은 들어 보지도 못했단다. 그걸 누가 먹느냐고 안 먹겠다는 것을 사정하여 억지로 한 술 먹였더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 처음 먹어본다고 잘도 먹었다. 그 후로는 종종 먹고 싶다고 하여 우리 집 인기 음식이 되었다. 엊그제도 어죽을 먹고 싶다 하여 냉동실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커다란 메기 한 마리를찾아내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때로는 족발이 먹고 싶다 하고, 후줄근히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빈대떡이라도 부쳐 먹자고 졸라댄다. 나를 두들기면 음식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인 줄 아는가보다.

생강

얼마 전에는 수정과를 만들었다. 생강은 손발이 차가운 사람이나 허약한 체질의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다. “요즘 들어 몸이 허하고 기력이 없다면 보약을 짓기 위해 한의원에 가는 대신 마트로 향하라. 여자 몸에 보약보다 더 좋은 생강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그 효능이 무려 18가지나 된다니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높여 주고, 가래를 없애 주고, 살균작용을 하며,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주고,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노화방지 등등 많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종종 일식집에 가서 스시를 먹으면 식초에 절인 생강이 반드시 따라 나오는데 왜 먹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다. 생강의 지우개 역할 때문이다. 한 종류의 스시를 먹은 후 생강을 한 쪽 먹고 다른 생선을 먹으면 먼저 먹은 생선의 맛을 입속에서 지워 주기 때문에 각각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냄새나는 고기 종류나 생선을 요리할 때 생강 한 쪽을 넣어주면 누린내가 말끔히 제거된다.

1석 2조란 말이 있다. 한 번의 시도로 두 가지 결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2파운드의 생강을 잘 손질하여 얇게 저미고 1갤런의 물과 마른 대추 한줌, 통계피 두 세 조각을 함께 냄비에 넣고 20여 분 끓여 물은 따로 보관하고 다시 1갤런의 물을 붓고 끓여내기를 네 차례 한다. 처음 끓인 물은 너무 맵고 나중 끓인 물은 싱거우니 같은 맛을 즐기기 위하여 네 차례 끓여낸 물을 섞어 준다. 그리고 각자의 입맛에 맞을 정도의 흙설탕을 섞어 주면 갈색의 수정과 완성이다. 물병에 담아서 한 병씩 나누어 주면 누구나 좋아한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하여 곶감을 잘게 썰어 넣고 잣을 조금 띄우면 훨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건져낸 생강은 프라이팬에 담아 흑설탕과 잘 섞어 가열하면 설탕이 녹으며 물이 나오는데 이 물이 다 없어질 때까지 잘 저어주며 중불로 졸인 다음, 훈훈한 곳에서 건조시키면 달콤매콤한 편강이 완성된다. 차 속에 놓아두었다가 구토 증세가 있든지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할 때 몇 조각 씹으면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히고 기분이 상큼해지기도 한다.

각기 다른 재주와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 공동체 생활이다. 남이 가진 재주를 부러워만 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나만의 도깨비 방망이를 갖게 하시고,  나누며 즐기고 살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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