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감기 휴유증이라 생각한 몸살기가  너무 오래 간다. 밥맛도  없고, 아침에는 눈꺼풀이 무거워 눈을 뜨기도 힘들다. 물에 젖은 솜처럼 온몸이 무겁고, 삭신이 쑤신다. 그렇다고 관절염이나 골다공증을 앓는 것도 아닌데, 죽을 병이라도 걸렸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황혼육아 우울증이란다.
 
자녀들 다 키워놓고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야 하는 황혼의 나이에, 손주들 돌보느라 육체적으로 기운이 딸리고, 그러다 보니 온몸이 아프고,  자연히 기분도 우울해지는 것이란다. 하루에도 수없이 안아 주어야 하는 등 아기 시중드는 일이 관절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말이  안 통하는 아기와  단둘이 하루에 보통 10시간 정도 있으니, 세상과 고립되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나 스스로  딸의 가족을 우리 동네로 이사오게 했다. 학군은 좋지만 세금이 비싸다고 우려하는 딸에게 내가 손녀를 돌봐 주면 세금이 좀 비싸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우리 동네로 끌어들였다. 그때는 단순하게 직장생활하는 딸도 돕고, 손주도 돌봐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딸의 가족이 우리 동네로 이사오자 우리는 하나뿐인 손녀를 유치원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아침에 딸이 손녀딸을 맡기고 출근하면, 아침밥 먹이고 머리 예쁘게 빗겨 유치원 보내는 재미로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유치원 학부모된 기분이었다. 점심 도시락 싸는 즐거움 또한 컸다. 손녀딸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먹이는 즐거움 또한 어디에도 비길 수 없었다. 그러면서 숨쉬기 운동만 했던 내가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스포츠클럽에 가입해 2년 동안 열심히 운동한 덕분에 최고의 건강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둘째가 태어나길 기다렸다.  내가 건강해야 아기를 잘 키워 줄 수 있기에, 교통사고까지 만드셔서 미리 건강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기도하며 기다리던  두번째 손녀가 생기자 우리 부부는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일하는 딸을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보아 줄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유별나게 아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는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던 손녀들이 초등학교 1학년과  19개월이 되었다. 둘째 은서가 기어다니기 전까지는, 은혜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한가했다. 미국에 온 후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은서에게 매일 잠언 한 장과 시편 한 편씩 읽어 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가득한 아이로 길러 주십사고 기도도 했다. CD로 찬송을 들으며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고,  그동안 미루어왔던 책도 많이 읽는 등 정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은서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해 버렸다. 유난히 잠이 없는 은서는 나하고  함께 있는 10시간  중에서 겨우 3시간 정도 잠을 잤다. 아기가  잠든 사이에 집안 청소를 하고 저녁 준비를 했다. 나 역시 젊어서 일을 했기 때문에  일하는 엄마들의 어려움을 너무도 잘  알았다.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 오면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데, 엄마 고픈 아이들은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지, 저녁 준비는 해야지,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러다보니 피곤해도 내가 힘든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집안살림을 도와 주게 되었다.

이제 은서도 19개월이나 되어 뛰어다니며 논다. 먹고 노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건강한 아이다. 잠도 없어 낮잠 한 시간 자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자기 욕구가 강해 무엇이든지 혼자서 하겠다고 한다. 밥도 혼자 먹겠다, 물도 어른컵에 마시겠다. 어른용 식탁의자에 앉겠다고 떼쓴다. 그러다보니 밥을 먹인 후에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하고, 어질러 놓은 것들을 치워야 한다. 자연히 식사는  건너뛰기 일쑤다.

나는 하루에도 노래를 수십 번 부른다  그림책에 코끼리가 나오면  코끼리 아저씨 노래, 곰이 나오면 곰 세 마리 노래, 병아리가 나오면 병아리 노래 등,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에 따라서 노래를 해야 한다. 처음엔 신이 나서 율동을 해가며 노래했다. TV도 은서가 좋아하는 “뽀로로”나 “방귀대장 뿡뿡이”만 본다. 반복해서 보다보니 다 외울 정도다.

요즘은 회의를 느낀다. 체력에도 한계를 느낀다. 하지만 딸에게 힘든 내색을 하면 마음 아파할까봐 더 씩씩한 척한다. 내 속을 모르는 딸은 “엄마 체력은 마징가제트야”라고 한다. 그것이 엄마라는 이름의 체력인 것을 누가 알겠는가. 체력에 문제가 생기니 마음에도 문제가 생긴다. 내가 힘들다고 하면 남편은 이해를 못한다. 눈에 넣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손녀랑 노는 것이 왜 힘드느냐, 기쁨이고 감사한 일이지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자청한 일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와  책임도 있다. 그러나 회의가 생기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지금  은서랑 노래나  부르고 춤이나 추고  있을 때인가?  말도 안 통하는 아이 보는 일에 귀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가? 나도 무언가 큰 일을 하고 싶은데...

물론 처음엔 “두 아이 돌보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사역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로 키우자. 섬김을 연습하자. 이 연습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더욱 보람되고 큰 일을 맡겨 주시겠지.”라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요즈음 그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께 묻는 시간이 많아졌다.‘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시나요? 현재의 제 모습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인가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아시겠지만  말 안 통하는 어린아이는 답답해 고등학교 이상만 가르치던 저였어요. 그런데 지금 제 꼴이 뭡니까? 말 못하는 아이랑 하루종일 있으라고 저를 머나먼 이국땅으로 데려오셨어요?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습니다.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며 살 수는 없어요.’

바로 이때 성령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신다. ‘난 네게 순종을 가르쳐 주고 싶은 거야. 작은 일에 순종하는 자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단다. 그리고  모든 일이 네 열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란다. 너는 네 손녀들을 내게 맡기고  내 보조역할만 하면 된단다. 사랑만 하면 돼. 아낌없이 말이야. 그 아이들은 네 손녀이기에 앞서 깊은 사랑으로 창조한 내 아이들이란다. 너는 전에도 네 아이들 키우면서 네가 원하는 대로, 네 계획대로 키우려고 애를 썼지만 그렇다고 네 뜻대로 자랐니? 나의 뜻대로 되었다는 것을 너도 시인하잖니? 네 뜻이나 계획대로 하지 말고, 나에게 의지하며, 다만 기도를 통해  내가 주는 지혜로 키우렴. 그렇게 해야 지치지 않고 항상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단다. 그래야 네 소중한 가족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단다. 너는 너무나 자기의가 강해.  네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네 열심으로 하려는 성격을 하루빨리 내려놓아야 한단다. 네가 다 내려놓고 나에게 순종할 때 비로소 네 가족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진단다. 그것이 바로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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