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듯 풍만한 가슴이 살포시 열리는 자목련의 묵직한 자태가 봄바람을 타고 거침이 없다. 지난 겨울이 별로 춥지 않고 대충대충 지나가더니 춘삼월 아름다운 향연이 절정을 향해 달음질친다. 예년의 서북미 날씨에 비하여 1-2주 빠른 것 같다. 이곳의 날씨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무렵에 제일 춥다. 1월 중순경에 새해의 전령 산수유가 고고성을 울리면, 2월부터는 성급한 각종 봄꽃들이 머리를 내밀고 경쟁을 하다가 꽃샘추위에 혼쭐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금년 봄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리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자란 충남 예산은 비옥한 땅과 나지막한 산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평온한 시골 마을이었다. 무서운 태풍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고,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온누리를 삼키는 수해마저도 피해가는 살기 좋은 곳이다. 몇 년 전 구제역이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을 때에도 예산군에는 한 마리 가축도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순박한 인심만큼이나 맛좋은 사과와 내포평야에서 생산되는 기름진 쌀이 주산물이고, 충효를 중요시하는 이 고장에서 윤봉길 의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각종 곡물을 팔고 살 때 됫박에 봉분을 이루듯이 풍성히 담아 준다.

나는 면소재지와 초등학교가 있는 곳에서 2km 정도 떨어진 산골마을에서 살았다. 개구쟁이 우리들은 앞산 뒷산 지천으로 핀 진달래꽃을 따서 먹기도 하고, 한 움큼 꺾어서 꽃방망이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산이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봄철이면 어디를 가도 산이 온통 꽃밭이 되어 분홍빛으로 불타기도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나는 바람에 방학때나 내려가는 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입대하고,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게 살다가 미국으로 떠나온 지 35년이 되었으니, 어느 노랫말에 나오는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 시절은” 아주 먼 옛날이 되었지만 문득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동안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봄에는 한 번도 가지 못하였다. 흐드러지게 피어 이산 저산을 불태우던 진달래꽃이 그리워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4월에 고국 방문을 앞두고 미리부터 수소문을 했다. 마침 형제와 같은 친구가 대구에 살고 있는데,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 축제가 볼 만하다고 했다. 우리 막내둥이 아름이와 조카 은정이 그리고 친구 가족이 함께 산행에 나섰다. 그곳에서는 참꽃 축제라고 불렀다. 한 시간 이상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오르는데 중간에 ‘문학의 향기 바람에 날리다’라는 이름의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줄에 매달린 큼직한 시화들이 바람에 여유롭게 그네를 탔다. 오르는 비탈길 옆에 둥글거나 각진 커다란 돌덩이들이 집단으로 흘러내리면서 쌓인 암괴류가 한국에서는 제일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수백 미터에 걸쳐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산등성이에 오르니 드넓은 개활지에 진달래 꽃나무가 가득한데 이미 많이 떨어지고 듬성듬성 남아 있는 참꽃들이 나를 반겼다. 1주일만 먼저 왔더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방방곡곡 가는 곳마다 옛날에 그렇게 많던 진달래꽃이 다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헐벗었던 민둥산들이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하여 키가 작은 진달래 꽃나무가 설 자리를 잃은 것 같았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아쉬움을 더하여가지고 오는 수밖에...

4년 전, 식물원을 크게 경영하시는 양 집사님께서 한국산 진달래꽃나무라고 하시며 한 그루 주셨다. 정성껏 심고 가꾸었더니 다음 해 날씨가 다 풀리기도 전 2월 중순에 성급히 꽃망울을 터뜨렸다가 꽃샘추위에 가녀린 꽃송이가 얼어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나무는 무사하여 잘 자랐다. 3년 동안을 해마다 꽃이 활짝 피지도 못하고 실패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올해는 포근한 날씨 덕분에 맵시 자랑에 여념이 없다. 잎사귀 하나 없이 알몸으로 연분홍 야리야리한 꽃을 피우고 날 좀 보라고 호들갑을 떤다. 나팔꽃과 같이 꽃잎이 한 장으로 둥글게 생겼고 다섯 개의 모서리가 돌아가며 있다. 속에는 가늘고 긴 암술과 수술이 여남은 가닥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살고 있다. 꽃이 다 진 후에 잎사귀가 돋아난다.

아! 진달래꽃. 얼마만에 한국의 진달래꽃을 맘껏 감상하는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고 좋다. 한 송이 따먹고 싶지만 아까워서 참았다. 한 그루밖에 없지만 그동안 잘 자라서 제법 많은 꽃을 피웠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낮에 시간을 내어 집에 돌아가서 한참동안 이리저리 살피며 열심히 전화기 카메라에 담았다. 이 속에서는 얼지도 않고 시들어 버릴 염려도 없다.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마다 바라보면서 대화할 수 있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한국산 배, 사과, 밤 등 각종 과일나무와 관상수, 그리고 꽃나무까지 옮겨다가 향수에 젖은 우리들을 아련한 고향땅 추억의 늪으로 인도해 주는 사업을 하시는 집사님이 너무 고맙다.
금년에는 흥부와 놀부에 등장하는 커다란 함지박은 아니라도 지난해에 받아 놓은 앙증맞은 조롱박 씨앗을 많이 심어 잘 다듬고 말려서 예쁘게 만들어 이웃들과 나누면서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되살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고향의 숨결을 느끼며 멀어져가던 소중한 추억을 불러 모아 어깨동무하고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주신 은혜가 감사하기만 하다.(워싱턴 주 밴쿠버)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