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뒤뜰 한쪽 옆에 심긴 작은 배나무에 꽃이 만발했다. 휘어질 듯 하얀 꽃을 매단 가지들로 인해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배나무가 차지한 두어 평 남짓한 맨땅에는 겨울 동안 내렸던 비에 웃자란 검푸른 잡초가 발목을 덮을 듯했다. 같은 키로 자란 풀은 잡초라기보다는 평화로운 초원의 풍경, 바로 그것이었다.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재스민 줄기들도 열심히 파란 잎을 흔들며 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봄볕이 경사지게 들어오는 처마 밑에서 김치를 담그고 있는 중이었다. 김치를 담그는 번거로운 일은 혼자 하기가 벅차서 시어머니께서 출타라도 하실 때에는  남편을 불렀다. 아쉬워서 부르긴 하지만 그 잔소리가 도를 넘어서 마음 편히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그날도 옆에서 잔일을 거들며 30년 넘은 그녀의 살림 솜씨를 타박하며 이것저것 훈수했다. 자신이 일러 주지 않아도 두어 달만에 한 번씩 담그는 김치, 이골이 난 솜씨를 도무지 믿어 주지 않았다. 배추를 씻어 물을 뺄 때는 바구니에 줄을 맞추어 곧게 늘어놓아야 한다느니, 파는 그 길이가 조금도 차이나지 않게 똑같이 썰어야 한다느니, 하여간 구박하는 데 재미를 붙인 듯했다.

그녀는 속이 상했지만 그나마 도와 주지 않는다고 할까봐 자존심은 어디로 보내 버렸다. 실실 웃어가며 배추며 파가 무슨 군대에 갔느냐? 조물조물 반죽하여 한 판에 찍어낸 것이냐? 음식의 맛도 예술이기에 일률적인 것보다는 울퉁불퉁해서 여기서 못 내는 맛을 저기서 보충해야 되잖느냐? 하며 장단을 맞춰 주었다.

사실 그들 부부는 바꿔 되었으면 참 좋을 뻔했다. 그녀에게 여성스러운 데라고는 생긴 것밖에 없다. 차분하지 못한데다가 행동의 폭이 크다. 같은 일을 해도 수선스러워,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이다. 남편은 정반대이다. 성품이 깔끔하고 맺고 끊는 일이 분명하다. 한 번 정한 일을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일 또한 끔찍이 싫어하고 융통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지만, 자상한 솜씨를 발휘하여 아이들을 다독거리거나 아픈 사람을 도와 줄 때는 그 자상하기가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릴 적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때 그녀가 이불을 덮어 준다 해도 아빠를 부르곤 했다. 파자마를 발까지 끌어내려서 펴 발목에 접어 주고, 담요를 잘 덮어 준 다음 몸 밑으로 밀어 넣어 고정시켜 주고, 이불도 죽 펴서 다독다독 덮어 주기 때문에, 아빠가 손질해 주면 포근하고 따뜻해서 잠이 잘 온다고 말하곤 했다.

부부란 오른쪽 다리가 없는 사람과 왼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만나서 완전한 두 다리를 이루는 것이라 했던가. 하여간 아내에게 없는 부분은 남편에게, 남편에게 없는 부분은 아내에게 있다는 것이리라.

김치소를 모두 만들어 버무리고 있었다. 연하고 실한 배추는 네 조각으로 나누었어도 크기만 했다. 김치병 아가리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자니 국물이 병 밖으로 당연히 넘쳐흘렀다. 어째서 그것 하나 간격에 맞게 자르지 못해서 그 모양이냐고 다시 남편의 핀잔이 시작되었다. 손끝이 야물지 못한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견뎌야 했다.

그때 갑자기 배나무 밑 어디에서 낮고 투박한 소리로 “뚜루룩 뚜루룩”두꺼비가 늦잠에서 깨어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불편하고 옹색했던 그녀에게 들린 갑작스런 소리는 분위기를 바꿔 주기에 충분했다. 저 두꺼비에게는 작은 잡풀밭이 에덴동산쯤 되겠구나! 이런 상상으로 남편의 말소리는 멀어지고 두꺼비 소리가 만들어 준 봄동산을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울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이번에는 담 넘어 뒷집 어디쯤에서 경쾌하고 날카롭게 “또르록 또르록”소리가 들려오고 있질 않은가. 두꺼비 부부의 베이스와 소프라노의 멋진 이중창이 시작되었다.

지청구를 참아가며 김치를 담그던 그녀는 일손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남편도 두꺼비들의 대화를 알아챘는지 화제를 옮겼다. “이쪽에서 수놈이 부르니 저쪽에서 암놈이 화답을 하네그랴.” 어찌 그리 잘 아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소리는 분명 암놈이라며 힘을 줘가며 말을 했다. 그 뒤에 영점 일초의 사이도 없이 쏟아지는 아내의 말. “뭐 우리 집은 그 반대로 날카롭기가 숫…….” 그녀는 벌건 양념국물 잔뜩 묻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덥석 막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푸하하하...”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커다란 남편의 웃음소리가 뒤통수 쪽에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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