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헤어 공항 검색대의 늘어진 줄은 장난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검색대 통과하기가 유쾌하지는 않다. 외투와 신발을 벗어서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담고, 컴퓨터도 꺼내고, 모든 소지품과 금속이 달린 허리띠, 시계나 전화기는 물론 주머니 속의 동전까지 모두 꺼내어 투시되는 검사대를 통과해야 한다. 2001년 9월 11일 이전 까지는 형식에 불과했던 수속이 이렇게 피곤하게 되어 버렸다. 그 때는 배웅하는 사람들이 탑승 게이트에 따라 들어가서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같이 기다려 주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노인이나 영어가 서툰 여행자들을 위해 가족들이 게이트도 찾아 주고, 짐도 들어 주고, 심지어 비행기 안에까지 들어가 자리도 확인해 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온 인류를 죄 가운데 밀어 넣었다면, 911 사태를 조종한 오사마 빈 라덴은 여행자들의 기쁨까지 한순간에 빼앗아 버렸다. 피곤하고 긴 시간이 소요되는 어리석은 검사일지라도 우리들의 안전, 곧 몇천만 분의 일에 속할 그 만약을 대비하여 모두 불평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은 일주일 후에 시카고에서 무슨 국제적인 회의가 있을 거라서 단속이 훨씬 심했다. 내가 이용하는 비행기회사가 자리잡고 있는 터미널 1은 검색대로 들어가는 몇 개의 문을 아예 닫고 한 곳만 열어 놓았다. 오렌지색 줄로 된 울타리를 쳐 놓은 지역을 짐을 질질 끌고 꼬부라지고 꼬부라져 30분 훨씬 넘어서야 신분증과 탑승카드를 검사받을 수 있었다.

대여섯 군데의 검색대가 오픈되어 있었지만 그것들 뒤로 늘어져 있는 줄은 착실한 검색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첫 번째는 다른 곳과 비교하여 줄이 더 긴 것 같고 그렇다고 멀리 가기도 피곤하여 두 번째를 택한 다음 마음속으로 두 번째구나 속삭였다. 덜렁거리는 성격인 내가 평소에 통과되는 검색대가 몇 번째였는지 마음에 둘 리가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알몸 투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검사 공간에 들어가 팔을 들고 자신의 몸을 투시할 수 있게 몇 초간 서 있어야 했다. 내 앞의 줄이 점점 짧아지고 마침내 서너 사람만이 앞에 서 있었다.

예전에 쉽게 통과하던 검색대 앞에 서 있던 한 경비원이 내게 왔다. 무엇을 잘못했나! 잠시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옛날 통과대로 검사해도 된다고 말했다. 순간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렇게 오래 서 있었지만 그곳으로는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떻게 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될 사람으로 봤단 말인가! 옆에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손을 맞잡고 뛰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한 걸음에 검색대를 통과하고 검사대를 통과한 나의 짐들과 소지품을 모두 챙겨들고는 검색대 옆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공항 직원들에게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까지 하였다.

탑승 게이트를 찾아가느라 표시판을 보면서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시계를 보는데 손목에 시계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흥분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덜렁이인 내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질 못한 것이다. 모두 지루하게 알몸 투시검사를 기다리는데 나만이 귀빈처럼 쉽게 통과했다는 행복감에 신발과 같은 플라스틱 통 속에 넣었던 시계를 그만 놔두고 온 것이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임박할 텐데 그까짓 시계 하나 포기할까 하다가 샌 프란시스코까지 네 시간 반의 지루함을 시간도 모르면서 보내야 할 막막함 때문에 다시 검색대로 향했다. 뒤에 서있는 경비원에게 두 번째 검색대로 3-4분 전에 통과했는데 시계를 잃어 버렸다고 말하자 두 번째 검색대 검사를 중단시키고 플라스틱 상자들을 하나하나 검사하는 거였다. 내 실수로 번잡에 번잡을 보태고 있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검색대 저쪽에서 한 손을 쳐들고 “Mam! I find it!”하고 외치는 경쾌한 목소리가 또 한 번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투시검사대를 다시 통과한 손목시계를 가져다 주면서 아주 비싼 것이라고 농담하는 경비원에게 행복한 웃음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복잡하고 지루해서 지칠 것 같았던 비행기 여행 속에 이런 시간들이 숨어 있을 줄이야. 탑승 게이트를 향해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과 비례해서 마음도 뿌듯해졌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기쁨의 시간을 숨겨놓으시고 나의 침착하지 못한 성품까지 동원하셔서 그것을 찾게 만드신 것만 같아서였다.(캘리포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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