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꿈에 그리던 텃밭을 가지게 되었다.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뒷마당에 서 있던 아름드리 나무 두 그루가 넘어지는 바람에  옆에 있던 두 그루마저 베어내고, 나무뿌리를 제거하는 대공사를 끝냈다 그리고 땅이 움푹 패인 곳을 메우느라 정원용 흙을 한 트럭이나 채워넣고 그 위에 유기농 원예용 흙을 뿌려 주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텃밭을 가지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준 샌디 덕분에(?) 텃밭을 가지게 된 셈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 오기 전까지 50년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서울 토박이인 나와 역시 서울 토박이인 남편은 인터넷에서  정보도 얻고 주위 친지들의 텃밭도 견학하며 열심히 농사하는 법을 배웠다.
드디어 마트에서 풋고추와 상추,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 모종을 사다가 양지 바른 곳에  심고, 약간 그늘진 곳에는 참나물과 미나리, 취나물을 심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종을 바라보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없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는 노루가 오지 않고 옆집의 무서운 개 두 마리 덕분에 동물에는 별로 신경을 안 써도 좋을 환경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터를 잡고 사는 토끼 가족이 문제였다. 그 토끼들은 깊은 산속 옹달샘이란 동요의 가사처럼 정말 부지런했다. 아침 6시쯤 부엌 창문으로 흐뭇하게 밭을 바라보고 있으면, 토끼 서너 마리가 벌써 뛰어다닌다. 그러나 텃밭 선배들의 말씀이 첫해에는 토끼도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야채를 먹지 않는다는 말만 믿고 울타리를 치지 않고 안심하고 있었다. 모종 심은 지 3주 가까이 되던 어느날, 습관대로 창밖을 보니 밭이 이상했다. 얼른 뛰어나가 보니 토끼 가족이 우리 가족보다 먼저 상추 파티를 한 것이다.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불고기에 상추쌈으로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려 했는데 속상하고 약이 올라 당장 홈 디포에서 치킨와이어와 쇠기둥을 사다가 무릎 높이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상추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그리고 이삼일이 지났을까? 부엌 창문을 통해 무심히 밭을 바라보고 있는데, 청설모 새끼가 울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아마 나무에 올라갔다가 뛰어 내렸겠지.  토끼하고는 나눠 먹기가 곤란하지만 네가 먹어야 얼마나 먹겠니?’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어미인 듯한 큰 청설모가 울타리 밖에서 찍찍거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하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계속 살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기 청설모는 울타리 안에서 어미 청설모는 울타리 밖에서 나란히 뛰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 이렇게 열 바퀴 정도 나란히 돌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어미가 이번에는 울 밖에서 점프를 해대는 거였다. “아가야, 엄마처럼 이렇게 점프해 봐.”하면서 펄떡펄떡 뛰는 엄마를 보며 아기 청설모도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기의 점프 실력은 약 2피트 정도 높이의 울타리를 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엄마는 울 밖에서 점프하며 새끼를 응원하고, 새끼는 안간힘을 다해 점프하고, 약 스무 번 이상 점프를 하더니 둘 다 지쳐서 쉬고 있길래, 안쓰러운 마음에 울타리문을 열어 주려고 부엌문을 여는 순간, 화들짝 놀란 청설모 어미와 새끼가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젖먹던 힘까지 짜내 드디어 상추밭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장난꾸러기 새끼가 나무 위에서 까불다가 상추밭으로 떨어진 듯했다 상추밭에서 놀다가 나가려는데 울타리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것이다. 놀란 어미는“아가야, 분명히 어디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야. 엄마가 울타리 밖을 돌며 나갈 길을 찾을 테니 너도 엄마 따라 울 안에서 돌아.”그러고는 울타리 주위를 열 바퀴 돌아도 빠져나갈 구멍을 발견하지 못하자 궁리 끝에 점프를 시도해 본 것이다.

“아가야! 엄마처럼 이렇게 높이 뛰어봐! 그렇지! 잘한다, 내 새끼! 옳지! 그렇게  조금 더 높이!”
“자~ 한 번 더. 그렇지!  다시 한 번 더 높이!”
“엄마  안 돼. 나 할 수 없어. 이제 기운도 다 빠졌어.”
“그래? 그럼 잠시 쉬었다가 다시하자.”
“얘야 큰일났다. 저기 주인 할머니 나온다. 잡히면 끝이야. 다시 한 번 힘내서! 자! 시작!”
“우와!!!!! 성공이다! 아가야,  다시는 장난치다 밭에 들어가지 마라.”

한 10여 분이 흘러갔을까? 그 짧은 시간에 상추밭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는 어미 청설모의 사랑을 보며 자식을 향한 내 사랑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아이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처를 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보다는 나의 의지대로 강요한 일 또한 수없이 많았다. 또한 이루지 못한 내 꿈을 아이들을 통해 이루려는 마음에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많았다. 아이들을 내 소유물처럼 착각하며 지내온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심지어 지금은 사랑하는 손녀들에게까지 그런 잘못을 반복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통해 항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신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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