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영(위스컨신)

어스름 저녁 달리는 길 양편으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어둠속의 유령처럼 버티고 있으면 그때는 겨울입니다. 바짝 마른 나무처럼 보일지라도 물기 머금은 듯 새까만 숲으로 변할 때는 봄이 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검은 흙에 생기가 돌고 세상이 온통 누르름한 잔디 색깔로 바뀌면 봄이 한 발짝 더 가까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온 세상이 화안해지다 못해 허어연 색깔로 탈색이 되면 새싹이 그 사이로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이때에는 간혹 겨울눈이 남아있을지라도 얼어붙은 돌멩이 밑에는 노란 싹을 틔우며 막 도착해 숨을 고르고 있는 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잔잔히 부는 바람에 마른 풀냄새가 풀풀 날리고 집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하다 싶으면 봄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급하게 꽃을 먼저 피우는 풀이나 나무도 있지만 비리비리한 냄새를 풍기며 나무들도 다투어 새싹을 냅니다. 싹들도 제각각이어서 여리지만 싱싱해 보이는 연두색으로부터 시작해서 빠알간 싹을 내는 나무도 있고 갈색 아기 손처럼 내미는 싹도 있습니다. 이파리가 부쩍부쩍 자라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르게 꽃들도 하양 노랑 분홍 빨강 파랑 보라 초록색까지 정신없이 피워냅니다.

그 붉은 기운과 초록색들이 맘껏 기지개를 펴고 활보할 때 노곤함과 더위가 엄습하면서 봄이 지나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봄 하늘을 부우옇게 만들고 그 속으로 민들레 홀씨를 날리기 시작하면 마지막 봄이 지나갑니다.
공중에 하나 가득 채우고도 쉴 새 없이 내려앉았다가 떠올라 어디든 날아갑니다. 제자리에 주저 앉는 것도 있고 가까운 들판이나 옥상 꼭대기, 곱게 가꾼 근사한 잔디밭, 먼지 낀 시골길 옆에도, 찌그러진 담장 사이에도, 도시의 콘크리트 위에도 깔려 있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갑니다.

머물은 홀씨는 다시 싹을 틔울 준비를 할 것입니다. 사뿐히 내려앉았던 홀씨들 중에 몇 개가 다시 떠오를 때 나는 하나님께서 민들레 홀씨를 만드신 목적을 읽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명을 되짚어봅니다. 지나간 세월 동안 얼마 만큼 나의 일에 충실했는가. 앞으로의 세월 동안 온전히 정리할 수 있겠는지 헤아리며 손을 꼽아 보기도 합니다.
흙과 바람. 돌, 나무, 꽃 속에서 그것들과 함께 숨쉬면서 나의 삶이 옳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올 봄을 보내며 충만했던 봄을 감사드리고 달려오는 여름을 손 벌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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