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에서 중요한 일은 물 주기와 잡초를 뽑아 주는 일이다. 물 주기야 호스로 시원하게 물을 뿌려 주면 물 주는 사람의 기분 또한 시원하고 상쾌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는 일이지만.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사전에서는 ‘잡초’를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이외의 것으로 경작지, 도로, 그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이며,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고 벌레의 서식지 또는 번식처가 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풀 뽑기는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며,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들과의 전쟁이다. 화단이나 잔디밭 같으면 잡초 제거제를 이용해 편하게 잡초를 제거할 수 있지만, 우리가족의 건강한 먹거리를 유기농으로 길러야 하는 텃밭에서는 제초제나 살충제를 사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텃밭농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풀뽑기인 것이다.

근 일주일을 계속해서 비가 오는 바람에 텃밭의 풀을 뽑아 주지 못했더니 야채밭이 완전히 풀밭이 되어 버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초를 다 없애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른 아침부터 밭에 들어갔다. 오이와 토마토 심은 곳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아 주고, 힘차게 팔을 뻗기 시작한 오이 넝쿨과 토마토를 케이지에 넣어 주고, 계분거름을 주었다. 풋고추와 가지도 풀을 매주며 거름을 주다 보니 어느 사이 점심때가 되었다.

이렇게 텃밭에 무성하게 뒤엉킨 잡초를 뽑으며, 나의 마음밭도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내 마음은 잡초 없이 깨끗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내 마음은 늘 엉겅퀴와 같은 지독한 가시투성이의 풀로 가득했지만, 그렇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나님께서 자녀삼아 주신 지 6년차 그리스도인인 나는 겉사람보다는 속사람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만 있을 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고 있지 못하다. 거기에 더해 순한 양의 가면을 쓴 이리였던 때도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 말씀을 보고 좋은 말씀을 들으면 그때뿐, 뒤돌아서면 다시 나의 믿음밭에는 온갖 잡초가 뒤엉켜 정작 가꾸어야 할 나의 속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 매일 가꾸어 주지 않으면 금방 풀밭이 되고마는 나의 텃밭과 다름없다.

미나리밭과 참나물밭에는 잡초가 거의 자라지 못한다. 야성이 강하고 번식력이 강해서인지 특별히 신경 써 가꾸지 않아도 빽빽하게 엮어져 있는 줄기와 뿌리로 인하여 잡초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들이 마치 말씀과 기도로 무장되어 있으면 어떠한 세상유혹에도 빠지지 않고 항상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텃밭에도 약 20여 종류의 풀들이 뽑아도 뽑아도 지치지 않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무 쓸모없는 풀에 지나지 않는 잡초이지만 그중에는 특별한 풀들도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즐겨 드셨다는 비듬나물은 맛도 좋지만 해열, 해독작용이 있으며, 위장병이나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쇠비름 또한 오메가3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고 나물로도 먹는데, 장을 튼튼하게 해주며, 각종 염증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비단풀도 말린 가루에 죽염을 섞어 잇몸 맛사지를 해주면 치주염에 효과가 있으며, 동의보감에 의하면 명아주는 중풍을 예방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질경이 또한 혈액과 혈관 청소에 효능이 있는 약용풀로 알려져 있으며, 민들레가 간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풀들을 공터에 따로 심다보니 쑥과 쇠비름, 비듬나물, 질경이, 명아주밭들이 더해져 나의 텃밭은 자꾸만 커지고 있다. 이렇게 약용풀밭(?)을 만들어 가꾸는 내게 주님께서는 또 한 가지 마음을 주셨다. 아무리 보잘것 없어 보이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 풀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그 쓰임새를 잘 알지 못할 뿐... 이러한 사실은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든 한 순간이라도 함부로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마당 한 귀퉁이에 흰색과 보라색의 청초한 도라지꽃이 피었다. 나는 화려하고 큰 꽃보다는 작고 소박한 들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집 마당엔 이른 봄 달콤한 향의 은방울꽃을 시작으로 한여름까지 붓꽃, 금낭화, 매발톱, 원추리, 달맞이꽃이 부끄러운 듯 자신만의 소박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나 자신의 삶이 누구에게 보란 듯 화려하거나, 주목을 끌어온 적이 없었기에, 그저 있으나 없으나 별로 표나지 않게 소리없이 한구석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들꽃을 닮아서 나는 들꽃을 좋아한다.

작년에 도라지 씨앗을 뿌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무슨 까닭인지 발아가 되지 않더니 일년이 지난 올봄에야 잎 가장자리에 톱니모양을 한 뾰족한 새싹들이 나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눈여겨보니 아주 비슷한 두 종류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한 종류는 분명히 잡초일 텐데, 나의 눈으로 도라지와 도라지 닮은 풀을 구별한다는 것이 어려워 망설이는 중에 마태복음 13장의 말씀이 기억났다. 예수님께서는 함부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하시면서 가라지 뽑으려다 곡식까지 뽑을 것을 염려하신 바로 그 부분이 생각난 것이다. 그래서 도라지와 잡초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도라지 닮은 풀은 뽑아 버리고 도라지만 정성을 다해 가꾸어 준 것이 나의 사랑에 화답하듯 청초하고 영롱한 보라색과 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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