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없었던 실없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있었다면 생각이 깊지 못한 내가 실언을 했노라고 잊어 주기를 부탁할 수도 있다. 부부 싸움을 할 경우, 분노에 찬 마음 때문에 말이 되지도 않는 소리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싸움이 한창이던 어느 순간 문득 내뱉은 내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깜짝 놀라서 본능적으로 천정과 구석을 두리번거리다가 기발한 생각을 해낸 점은 대견하다고 느껴 웃고 말았다. 남편이 상처를 받았다면 마음속에 오래도록 저장되어 있다가. 분이 나면 한 마디도 빼지 않고, 많은 이자까지 더해서 내게 되갚아 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봤다.

다행히 상대의 마음에 남지 않았다면 순간을 번개처럼 살았을, 내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흔적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책잡힐 말이나 부끄러운 소리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초등학교 때였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큰오빠가 동생들을 모두 앉으라더니 우리들 앞에 작고 검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 상자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돌아가며 노래를 시키는 자연스럽지 못한 풍경을 만들었다. 위엄 있는 큰오빠의 명령이라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서열에 따라 나는 셋째 오빠 다음으로 “고향 땅이 여기서….” 하고 개미 소리 만하게 노래를 불렀다. 모두의 노래가 끝나고 오빠는 그 소리들을 다시 들려 주었다. 우리들의 소리가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나왔다. 그때의 경이로움이란! 아직도 입만 크게 벌리고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가족들의 얼굴이 담긴 방안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기막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세상의 흐름을 한참 늦게야 따라갔던 시골, 하늘과 땅과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에서 라디오 다음으로 봤던 문명의 이기였기에 놀라움은 당연했다. 그때가 60년대 중반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상전벽해나 격세지감이란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내 손 안에도 말을 저장시킬 수 있는 전화기가 늘 들려져 있으니 말이다. 이 전화기에는 말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을 간단히 녹화할 수 있는 기능까지 있을 뿐 아니라, 밤과 낮이 다른 먼 나라 이야기까지 실시간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런 문명의 이기 덕분에 편해져만 가는 세상이다. 문명의 이기를 가장 잘 쓰는 곳이 수사기관이 아닌가 한다. 곳곳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실수가 적어지고 쉽게 범인을 찾아낸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용했던 전화의 통화 상대자는 물론이요 통화 내용까지 알아낼 수 있기에 분명 범죄 수사에는 그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행동과 말들이 사라지질 않고 본인도 모르게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6월 초, 세상을 경악케 만든 뉴스가 터져 나왔다. 전직 CI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사람의 폭로가 바로 그것이다. 스노든은 미국 안보국이 프리즘이라는 전자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의 온갖 인터넷 정보와 전화 통화를 수집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IT기업들의 서버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벌여왔다고 폭로한 것이다. 개인들의 사사로운 일상이 수시로 공개되는 페이스북과 인터넷 검색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 서버의 감시와 정보 수집망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안보국이 국경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수집한 정보가 130억 건에 달하고 자국민에게서 수집한 정보만도 29억 건에 달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폭로한 그는 “내 말과 행동 모두가 기록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도 않고 그런 세상을 지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라는 고백을 했다. 과연 이런 문명의 이기들이 앞으로 몇 십 년 후면 어디까지 갈까.

내 입에서 나와서 공기를 타고 상대의 귓속으로 흘러들어가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었던 말이라는 것이 이젠 그 영역을 넘어서 어딘가에 저장되어 버리는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온 세상 사람들의 말을 가둘 수 있는 장치가 있었던 것도 모르고, 머릿속으로 홀연히 떠오른 생각을 굉장한 상상이라고 혼자 웃었던 나는 아직도 산골의 시골뜨기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럴지라도 내가 했던 말들이 내 주위를 졸졸 따라다니며 책임을 묻고, 때로 비웃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조심에 조심을 하면서 피곤한 생활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이 기회에 아예 책잡힐 말, 흉이 될 말, 부정한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게 조심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닦고 또 닦아, 생각조차도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바꾸는 훈련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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