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4월 4일 저녁 6시, 한 흑인 남성이 테네시 주 멤피스의 어느 모텔 바깥 난간에 기대어 서서 멀베리 길 너머의 허름한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30구경 소총 탄환이 그의 목과 얼굴 오른쪽 부분을 관통해 버렸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간 그는 1시간 5분만에 사망했습니다. 그를 쏜 사람은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라는 백인 남성이었고, 세상을 떠난 그는 마틴 루터 킹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 4월 16일 화요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앞에 <버밍햄 뉴스>라는 한 부의 신문이 던져졌습니다. 앨라바마 주의 기독교 및 유대교 성직자 8명이 작성한 편지가 실린 신문이었습니다. 내용은 킹 목사의 시위를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이 신문을 받아든 킹 목사는 그 유명한 “버밍행 감옥에서 쓴 편지”로 답을 합니다: “인종차별의 독화살에 맞아 보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기다리라’는 말이 쉽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악한 폭도가 당신들의 부모를 마음대로 죽이고 동기간을 기분내키는 대로 익사시키는 것을 보았다면, 증오에 찬 경찰관들이 당신들의 흑인 형제자매를 욕하고 발길질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것을 보았다면, 2천만 흑인 형제의 대다수가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가난이라는 답답한 우리에 갇혀 질식당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당신들도 여섯살배기 딸에게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놀이공원에 갈 수 없는 이유를 대지 못해 졸지에 혀가 굳고 말더듬이가 된다면, 흑인이라 놀이공원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딸의 눈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본다면, 그 어린 마음에 벌써부터 열등감이라는 불길한 먹구름이 끼는 것을 본다면, 무의식중에 백인에 대한 원한이 싹 터 점점 성격이 비뚤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들도 다섯 살배기 아들한테서 ‘아빠, 백인들은 왜 이렇게 흑인들을 못 살게 굴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을 쥐어 짜내야 한다면, 먼 길을 이동할 때도 흑인을 받아 주는 모텔이 없어 밤마다 자동차 안에서 쭈그리고 자야 한다면, ‘백인용’과 ‘유색인용’이라는 지긋지긋한 표지판에 날마다 굴욕감을 느껴야 한다면, 이름 대신에 ‘깜둥이’로 불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하대를 당해야 한다면, 당신들의 아내와 어머니가 결코 ‘부인’이라는 존칭을 듣지 못한다면….” (『차별없는 복음』존 파이퍼)

킹 목사가 이 편지를 쓴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킹 목사와 같은 신앙을 가진, 같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지도자들이었고, 같은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사용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들은 백인이었고, 킹 목사는 흑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왜 당시에 인종차별에 앞장섰던 남부 지역의 대다수 백인들은 기독교인들이었고 교회였을까요? 같은 하나님, 같은 성경을 보는데, 왜 한 쪽은 인종차별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왜 다른 한 쪽은 그것이 죄라고 생각했을까요? 답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떤 입장에서 취사선택했느냐에 있습니다. 한 쪽은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요? 혹시 우리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나오면 외면하는 단계를 넘어, 여러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 만든 자기 합리화의 논리로 교묘히 그 말씀을 뒤로 내던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존 비비어는 자신의 책 『음성』에서 “우리는 듣고 싶은 부분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씀도 다 들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실제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그 말씀이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다.”라고 지적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혹시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당신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씀이나 설교가 나오면, 애써 외면코자 한 적은 없는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 듣고 싶지 않은 그 말씀이 바로 당신에게 주시는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는지요?

그렇게도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 보내며,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렸던 베뢰아 지역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자세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이 해의 남은 시간들을 하나님 말씀의 은혜 속에 깊이 잠겨 보기를 소망해 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행 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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