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참 놀라웠던 것은 교수님들의 독서량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이론서라는 것들은 소설이나 수필집을 읽는 것과는 달리 많은 주의와 생각을 필요로 합니다. 쓰여진 문장이나 단어들도 전문적이고 특수한 것들이라 사전의 이해 없이는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특히 번역서의 경우엔 각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의미전달 체계로 인해 뜻이 오역되어 있는 경우도 많아 많은 곤란을 겪고 시간 투자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도교수 한 분이 내게 가르치는 자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읽기’라고 조언하셨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은 적어도 한 주에 이론서 1,2권을 독파해야 하며 이러한 읽기가 평생토록 이어져야 합니다”라고 당부하시며 “읽기에 익숙해지면 독서량은 분명 증가합니다”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이셨습니다. 그 지루하고 복잡한 것을 평생동안 중단없이 한다는 것은 정말 공부머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선 다양한 피교육자의 심정과 호기심, 관심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발생가능한 온갖 질문에도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양한 피교육자의 입장과 능력을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교육자의 입장인 것입니다.

교육자를 지도자의 한 예로 들었지만, 지도자는 자신만의 생각과 처신만을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관계 가운데 놓여 있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들의 현상과 드러난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원인과 과정, 결과, 그리고 이 사건으로 파생될 수 있는 다른 일들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처지도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반 사회 속에서의 지도자도 이러할진대, 영적 지도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영적 지도자는 교회 내의 특별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인 하나하나를 귀한 영적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신앙인들은 단지 따라가는 follower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요, 향기로서 세상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창조되고 선택되었습니다. 이런 영적 지도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죄의 등급을 매겨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며, 모든 세상과의 관계에서 철저하게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영적 지도자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정책이나 교회법으로 만들어진 판단 기준을 가지고 마치 영원불변한  진리의 검인 양 휘두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담을 쌓아간다면 그곳엔 거세된 종마의 미쳐 날뛰는 폭력만 남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교회의 모습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군상들 속에서, 우리 서로의 모습들 속에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차별이나 배척이 있어서도 안 되며 우리의 결정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이 제한되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중보자로서 비극적인 인간적 최후를 마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과 인간을 다리 놓는 역할이 영적 지도자의 모습이며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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