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는 비가 야속하기만 하다. 원래 서북미 지역 날씨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3~4주간 연속해비가 내리거나 잔뜩 찌푸린 날씨 덕분에 금년 봄 토실토실 살이 오른 맛있는 고사리를 꺾어서 한 몫 보려고 잔뜩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울상이다.

비가 많이 오는 기후라서 높고 낮은 산과 들에는 온통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수목이 울창하고 철을 따라 각종 토산품들이 풍성하다. 산과 바다 그리고 거대한 컬럼비아 강이 어울린 이곳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지천으로 널려 있는 각종 토산물을 채취하느라 봄 한 철에 너무나 바쁘다. 부드럽고 연한 미역이 썰물을 이용하여 따스한 봄나들이 하느라 갯벌 가득히 부산을 떤다. 야산에 가면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고사리 연한 싹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마치 대나무순이 자라듯 한다.

5월 하순부터 3-4년의 긴 유랑생활을 끝내고 자기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으려는 준치들이 컬럼비아 강을 들썩들썩 흔들어놓는다. 썩어도 준치라고 하며 한인들이 좋아하는 가시투성이 고기는 러시아인들의 준치 사랑에는 명함도 내놓지 못한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낚싯대를 메고 나갔는데 얼마나 많은 러시아인들이 몰려 있는지 간신히 그들 틈에 끼어서 내가 십여 마리 건져 올리는 동안 그들은 7~80여 마리씩 낚아 올린다. 고기 사다리를 설치해 놓고 고기들이 용이하게 댐을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어 놓았다. 최고 절정기에는 하루에 20만 마리 이상의 준치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고기 사다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지난 주일 오후, 누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월요일 아침 아내와 셋이 모처럼 고사리 사냥에 나섰다. 1980년 5월에 화산이 폭발하여 유명해진 헬렌 마운틴 기슭으로 갔다. 목재를 벌목하고 새로 심은 어린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사이에 고사리만 빼곡히 들어서 있다. 벌목한 나무들을 실어 나르기 위하여 임시로 만든 자갈투성이 도로는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림청에 가서 고사리 채취 면허증을 받는데 돈 한 푼 받지 않고 해주면서 친절하게 자세한 지도까지 나누어 준다. 한 달간 사용할 수 있으며 1인당 200파운드까지 채취할 수 있다. 세 명이 부지런히 경사가 40도를 넘나드는 비탈진 산골짜기를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서너 시간 수고한 보람이 있어 90여 파운드를 꺾어 가지고 왔다. 이것을 삶아서 잘 건조시키면 7파운드 정도의 마른 고사리가 된다. 산을 오르내리더니, 평지에서도 걷기를 싫어하는 아내가 돈을 나누어 줄지언정 이렇게 고생하여 꺾은 고사리를 나누어 주지는 못할 것 같다고 한다. 얼마나 힘이 들고 숨이 차는지 새삼스레 세상에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음 날부터 비가 내리는데 도대체 햇볕을 구경할 수가 없다. 셋째 날이 되니 젖은 고사리가 미끈미끈하며 상할 기세다. 그동안의 수고가 너무 아까워서 가게로 가져다가 커다란 워킹쿨러 위 훈훈한 장소에 널어 말리기로 했다. 두어 시간 온몸이 후줄근하게 젖도록 수고한 보람도 없이 다음날 아침에 보니 다 상해 버렸다. 쓰레기통에 버리는 마음이 아프다. 그냥 꺾어만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것조차도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공해가 없는 곳에서만 자란다는 고사리는 당질, 칼슘, 칼륨, 철분, 단백질, 무기질이 풍부하여 피를 맑게 해주고, 두뇌를 깨끗하게 해주는 식품으로,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이뇨제, 구충제 및 해열제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생고사리는 많이 먹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정력이 약해지며 발암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삶고 물에 담가 놓으면 독소가 녹아나가기 때문에 너무 많이 섭취하지 않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2.800여 종의 고사리가 전 세계에 걸쳐서 서식하며 옛날 중국에서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먹고 충절을 지켰다 하여 충의와 절개의 상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며칠 후 누님과 함께 다시 한 시간 이상을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서 헬렌 마운틴 기슭으로 갔다. 가는 길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높고 낮은 산골짜기마다 미송이 울창하고,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고, 오가는 길가에는 소만큼이나 큰 엘크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잔뜩 찌푸린 날씨다. 금년에는 초봄에 가물어서 고사리가 좀 늦게 올라오는 것 같다. 사람 키만큼이나 자라는 고사리가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온산에 가득하다. 고사리밭이 아니라 그야말로 고사리 공화국이다. 지난해에 2m 이상 자랐던 고사리가 겨울을 지나면서 스러져 두툼한 이불처럼 덮인 사이로 연한 새싹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올라온다. 마치 어린 병아리가 어미 날개 품에서 머리를 내밀 듯이.

가져간 간식을 제대로 먹을 겨를도 없이 부지런히 꺾었다. 말리지 못하고 버린 만큼은 꺾은 것 같다. 이틀 동안이나 비가 내려서 나의 애간장을 다 태운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은 햇볕이 하루 종일 쏟아진다. 이때를 놓칠쏘냐 하고 집 앞 아스팔트 길 위에 내다 널어놓았더니 아쉬운 대로 썩지 않을 만큼 말랐다.

몇 차례 다니면서 어렵사리 꺾어다 말린 고사리를 가지고 우리 집에서 몇 차례 사용하고 마음에 빚진 분들과 조금씩은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힘은 들었지만 이러한 환경 속에 살게 해주신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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