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늦게까지 티브이 영화에 몰입했다. 몇 마디 대사에 사로잡혀 15분마다 튀어나오는 광고도 열심히 참았다. “Don’t pay it back.” 돌려받을 생각 말라고? “Pay it forward.”다른 사람에게 갚으라고? 영화가 끝난 시각은 대충 밤 1시. 슬픔과 연민이 범벅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최루성 멜로물의 화살에 명중된 탓이랴? 한동안 뇌리에 남아 양심을 슬슬 건드리던 영화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랑 나누기라고도 불리는 <Pay It Forward>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미 몇 년 전에 상영된 영화였다. 캐더린 리안 하이드가 2000년에 출간한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란다. ‘세상을 더 낫게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내어 일 년간 실천하라’는 사회숙제를 받은 주인공 소년의 대응이 그 줄거리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나, 트레버의 아이디어는 이것입니다. 세 사람에게 아주 좋은 일을 해주는 거예요. 그 도움은 그들 스스로는 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해요. 그들이 어떻게 은혜를 갚으면 되느냐고 물으면 Pay It Foward! 즉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요구하는 거죠. 세 사람이 각각 세 사람씩 돕는 거예요. 그럼 9명이 도움을 받겠죠? 그 다음에는 27명, 81명... 이렇게 16번만 이어지면요. 43,046,721명이 되거든요. 우리나라 사람 전부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가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구요.”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도움이라니? 내게 있는 사소한 것들을 나누는 그런 사랑나누기가 아니라고? 기억에 남는 사랑이나 친절이 모두 담보성 내지 대가성 행위였던 것만 같다. 내 마음의 외로움을 어쩌지 못해 거꾸로 무언가를 주려 했거나. 하기야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기억에 남지 않아야 맞을 것도 같다. 누군가의 가치관이나 삶의 행로를 바꿀 만큼의 사랑이라...

소년이 도움을 준 세 사람은 아름다운 소망처럼 즉각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노숙자에게 저금을 털어 옷과 신발을 사주고 친구가 되지만, 엄마의 몰이해로 인해 노숙자는 다시 마약중독자로 돌아가 버린다. 심한 화상 자국 때문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회 선생님과 엄마를 이어주어 사랑을 선물하고 싶지만, 알콜 중독의 오래된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와 화상을 입힌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는 선생님은 서로 겉돌기만 한다.

한편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의 선물을 우연히 받고 얼떨떨해진 한 리포터는 그를 도와준 사람이 남긴 ‘내가 받은 선행을 다른 3명에게 갚는 것뿐“이라는 말의 진원지, 사랑의 시발점을 찾아나선다. 알지 못하는 이로부터 조건 없는 도움을 받은 이들은 어느결에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되고, 시나브로 삶이 변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국 이곳저곳을 헤매던 리포터는 드디어 시골학교에서 어린 소년을 찾아낸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시작도 못하지만, 세상이 생각만큼 엿 같은 곳은 아니에요.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지금의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지요. 나쁜 줄 알면서도 두려워서 버리질 못해요, 사람들이 모두 그런 식으로 산다면 세상에는 온통 패배자들뿐이겠지요.”
“이 일은 쉽지 않아요. 계획을 세울 수도 없어요. 사람들을 더 많이 관찰해야 해요. 그들을 지켜 주려면 관심을 집중해야 해요. 그들이 원하는 걸 항상 알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자전거와는 다른 무엇을 고치는 아주 커다란 기회인 것 같아요.”
“You can fix a person. 당신은 사람을 고칠 수 있어요.”

리포터와의 인터뷰를 마친 트레버의 눈 앞에서 세 번째로 돕고 싶어한 심약한 학급 소년이 덩치 큰 깡패 소년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다. 말로는 설득되지 않던 그들을 향해 소년이 돌진한다. “도와줘, 트레버!” 그 말이 귀에 쟁쟁하다. 번번히 겁에 질려 바라만 보았던 덩치들을 붙들고 구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년의 공격을 받은 비행소년이 칼을 꺼내들고 소년을 찌른다. 이 무슨 반전이냐? 칼로 찌를 정도의 갱 영화도 아니건만? 엄마도 선생님도 급우들도 경악한다. 소년이 죽어간다.

청소년 시절에 행운의 편지를 가끔 받은 기억이 난다. 그 편지를 베껴서 5명이고 10명이고 지정된 숫자 만큼 주변에 띄우면 내가 행운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재앙이 닥친다는 아주 짖궂은 편지가 심심찮게 유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무슨 못난 심뽀람. 재앙을 일부러 불러들여 남들에게 떠미는 고약한 장난을 시작한 사람들이 영화 속 소년의 슬픈 눈망울을 본다면? 엿 같은 세상을 만들지 말아 달라는 소년의 안타까운 호소를 듣게 된다면?

낯익은 아역배우의 슬픈 눈빛은 밀려드는 잠을 몰아내 주었다. 사랑나누기운동도 일어나고 그 재단도 생겨난 계기가 되었다는 원작 소설의 작가는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무상으로 받은 낯선 이웃들의 도움을 잊지 못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한국에서 티브이로 보았던 친절 릴레이 프로도 애잔한 눈빛을 가진 이들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모티브를 얻었을까?

소년의 집 앞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진다. 가져온 꽃들이 꽃밭을 이루고 들고 있는 촛불들이 환하게 어둠을 밝힌다. 소년의 소망을 가슴에 심은 이들의 기도가 퍼져나간다. 내 마음까지......

You can fix a person!
Pay it Fo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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