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안의 딸이 결혼하겠다며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버지의 눈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무표정하게 있다가 내쫓다시피 딸의 남자친구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질렀습니다. “내 배에 칼이 들어 오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 딸은 괴로워하며 남자친구에게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맹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를 놓칠세라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아버지 배에 칼이 들어가게 되었으니 되었어!” 그리고 죽자 살자 병원을 드나들며 아버지를 돌봐 드렸습니다. 그렇게도 못나 보였던 딸의 남자친구의 정성에 감동받은 아버지는 결국 결혼을 승락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가족들끼리 모이면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칼이 들어가기 전에는…” 송길원 목사님이 쓰신 「말, 3분이면 세상을 바꾼다.」에 나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교훈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내뱉은 말이 씨가 되어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말대로 결국 그의 배에 칼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 딸의 남자 친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여 결국 결혼 승낙을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교훈을 생각해야 합니다. ‘은혜’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남자친구는 ‘보이지 않는 섭리자’의 ‘은혜’를 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내 배에 칼이 들어 오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더라도, 그의 배에 평생 칼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고, 아무리 그 남자친구가 지극정성 간병했더라도 아버지의 마음이 요지부동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자친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은혜’가 없었더라면 여자친구와의 결혼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인으로 존경받는 사람 중에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마쓰시다 전기 산업 회장이었던 마쓰시다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마쓰시다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마쓰시다 회장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세 가지 하늘의 큰 은혜를 입고 태어났기 때문이라네. 첫째, 가난, 둘째, 허약한 몸, 그리고 셋째, 못 배운 것이라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더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고는 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고, 몸이 허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닫고 겨울철에도 냉수마찰을 날마다 하며 90세가 넘었어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네. 또 초등학교 4학년때 중퇴했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배워 왔다네. 그래서 더 많은 상식과 지식을 가질 수 있었다네. 내가 가졌던 세 가지 불행한 환경은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 주기 위해 하늘이 내게 준 은혜였다네.”

신약성경에 사용된 “은혜”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카리스”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자비롭고 친절한 선한 뜻” 또는 “사람들에게 행해진 하나님의 거룩한 영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양한 형태의 은혜를 주셨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 은혜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며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느냐, 은혜를 불평의 대상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일생에 주어졌던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 한 구절 안에 압축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불평거리로 보이는 것입니까?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까? 감사거리요 자랑거리로 보이는 것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어떻게 인지하고 대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은혜가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