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중순의 이글거리는 태양도 지쳐서 헐떡이며 더운 숨을 몰아쉬는 무더운 날씨다. 90도를 넘나드는 이 지역 기후로는 가장 더운 날씨에 대가족을 이끌고 생각지도 못했던 이사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5년 전 새로운 비즈니스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불경기라서 가게와 집을 팔지 못하고 세를 주고 왔기에 렌트 하우스를 얻어서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한 달의 여유도 주지 않고 비워달라는 말에 서운하고 당황하여 이사할 곳을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날짜는 지나가는데 답답하고 걱정이 되어 집주인에게 조금의 여유를 달라고 하니 한 마디로 거절한다. 2 주도 남지 않은 기간에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하나님께 떼를 쓰기로 했다. 하루 그리고 반나절을 굶으며 졸라댔다. "제가 좋은 집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땅이나 널찍하고,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렌트 하우스를 찾는데 그것이 지나친 욕심인가요?" 하면서 졸라댔다.

욕심 부려 사놓았던 집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팔리지 않고, 가게에서 너무 멀어 모두 세로 주고 나는 살 집을 찾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루가 지나고 인터넷을 통하여 집을 찾고, 주인과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다음날 허락이 떨어졌다.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한 숲이 1에이커, 그리고 정원이 반 에이커인 동네 안에 있는 작은 섬 같은 아름다운 환경의 단 하나밖에 없는 집이다. 멋쟁이 하나님이 못난 내가 떼를 쓰는데 이렇게 과분한 선물을 주셨다.

5년 동안 마음껏 누리면서 즐기고 살았으니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땡볕이 으르렁대는 7월 말, 아끼고 정성들여 키우던 과일나무와 화초들이 문제였다. 답답한 마음에 식물원을 경영하시는 양 집사님께 자문을 구했다. 집사님 말씀이 지금은 옮길 때가 아니니 포기하라고 하신다. 주렁주렁 열린 거봉포도가 아깝다고 하니까 자신이 더 좋은 종류로 줄 테니까 옮기지 말고 포기하라 하신다.

4-5년 정성들여 키운 보람 있어 올해 풍성한 첫 열매를 맺은 것이 아깝지만 인정사정없이 독한 마음먹고 잘랐다. 첫 열매를 주렁주렁 맺은 모과나무도 밑동만 남기고 아쉬움까지 잘라 버렸다. 두어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돌같이 굳은 땅을 곡괭이로 찍고 삽으로 파내면서 한 그루씩 정성껏 심었다. 닷새 동안 모과나무가 셋, 열매 맺는 큰 포도나무가 여섯, 작은 포도나무, 은행나무, 진달래, 가시 없는 산딸기, 목단, 작약, 수국까지 4-50그루를 옮겨 심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나무마다 넓고 깊이 파고 심었다. 우묵한 곳에 물을 가득 채워 놓으면 먼지가 풀풀 날리던 메마른 땅이 얼마나 물을 들이켜는지 삽시간에 없어져 버린다.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돌보았더니 1주일이 지나면서 모과나무와 포도나무 몽둥이 같은 등걸에서 새 움이 돋기 시작한다. 2주가 되니까 포도나무 새싹이 포도송이를 머리에 이고 올라온다. 잘린 아픔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잘도 자란다.

 
100여 평의 텃밭을 일구기로 하고 우선 급한 대로 한쪽에 머위와 부추, 그리고 대파를 옮겨 심는데 너무나 힘이 든다. 93도까지 올라갔던 수은주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나를 짓누르는지 입에서 단내가 난다. 다음 날은 고추를 모종하고 오이와 호박을 옮겨 심고 나니 이제는 쑥이 자신도 자리를 잡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마치 가나안 땅에 돌아온 이스라엘 각 족속이 땅을 배정 받듯이 말이다.

쑥은 치놀 성분이 많아서 위액 분비 촉진, 소화 흡수 증가, 면역력 증강에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암 예방에 살균, 피로회복, 다이어트에 지혈 작용까지 한다니 가히 약초라 할 수 있겠다. 금년 봄에는 이 권사님이 쑥을 좋아하셔서 갖다 드렸더니 생전 처음 먹어 보는 떡을 만들어 주셔서 잘 먹은 적이 있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쑥을 나눌 생각에 다시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면서 쑥대밭을 만드는 기쁨이 피로까지 잊게 한다. 내년 봄에는 쑥 부침, 쑥 튀김, 쑥떡, 쑥국 등 풍성한 쑥 내음이 진동할 것을 기대하면서 넓은 땅에 마음껏 심었다.

아내는 원래 꽃이나 채소를 가꾸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극성스러운 나를 만나 살면서 조금씩 변하더니 이제는 일어나나마자 호스를 끌고 새로 심은 나무들과 채소들에게 물을 주러 간다. 포도나무와 모과나무를 옮겨 심고 열심히 물을 주어 살려내고, 현재의 상황에서 살 길을 찾아 새싹이 마구 돋아나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나 보다.

 
어제는 돌나물밭을 만들자고 졸라댄다. 어릴 적 고향에서 자랄 때 물김치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님이 그렇게 생각나고 먹고 싶단다. 마침 이사하면서 40여 개의 화분을 이끌고 왔는데 그곳에 돌나물이 가득 자라고 있는 것이 두어 개 있었다. 내가 곡괭이로 땅을 파내면 아내는 호미를 가지고 잘게 흙덩이를 부서뜨리며 밭을 만들고 돌나물을 심고 땅이 흠뻑 젖도록 물을 주었다.

돌나물은 비타민 C, 칼슘, 인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나른한 춘곤증에 좋고,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대체하는 성분이 있어서 갱년기 우울증에도 좋다고 한다. 또한 해독, 해열의 효능이 있고, 열량이 낮아서 다이어트와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한다. 이런 좋은 채소가 아무 곳에나 심어 놓고 물만 잘 주면 연한 줄기 한 마디마다 오이 씨앗 같은 잎이 세 장씩 돋아나며 이곳저곳 마구 기어 다니면서 잘도 번식한다. 우리 누님도 이것으로 얼마나 물김치를 맛깔나게 담가 주시는지 생각만 하여도 금세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내년부터는 다시 이 풍성함을 이웃들과 나누고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그리고 못 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오늘의 내가 되도록 인도하시고, 나의 필요를 넘치도록 흔들고 누르시면서 채워 주시는 은혜가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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