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명의 발상지라고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이집트에 갔다. 유명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부서진 신전의 잔재들과 그 신전 벽에 그려진 벽화와 문자들, 원형 기둥에 정교하게 새겨진 종려나무 무늬를 보며, 부요하고 화려했던 옛날의 이집트를 상상해 불 수 있었다. 3면의 각도가 완벽하다는 거대한 피라미드의 내부는 웅장한 겉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자그마한 방 하나가 전부다. 물론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빈 방이다. 그 방은 죽은 왕의 시신과 그가 생전에 애용하던 유품들을 간수해 둔 공간이었다고 안내자가 설명했다.

왕의 골짜기(The king’s valley)라는 산에서도 많은 무덤들을 보았다. 시신의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과 막대한 인력을 투자했겠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텅 빈 무덤들뿐이다. 나일강이 가져다 주었다는 풍요와 부를 힘입어 막강한 힘을 주변 나라들에게 과시했던 왕들도 죽음 앞에서는 전혀 무력했던 모양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영혼이 안식할 곳을 알 수 없었던 애굽 왕들의 고뇌와 절박한 두려움이 필경 피라밋의 그 거대함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유명한 박물관에 누워 있는 미라에게서도 언젠가 다시 한 번 살아나기를 갈망하던 그들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여행 일정 중에 나일강 크루스가 있었다.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 댐을 둘러본 후, 수에즈 운하를 향해 북쪽으로 항해하던 중 모세 선지자의 출생지인 룩소(Luxor)에 들렀다. 강물에 떠내려가던 갈대 상자 속에서 히브리인 아기를 구해낸 애굽 공주가 아기의 이름을 모세(Moses)라고 지어 주었다. 그 후 어린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 입양되고, 왕실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후 애굽을 떠나기까지 40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그 후 애굽을 떠난 그가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양 치는 목자로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받고 그의 나이 80세에 애굽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애굽을 통치하던 오만하고 고집 센 왕 바로(Pharaoh) 앞에서 모세 선지자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열 가지 재앙과 기적을 펼쳐 보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던 그곳이 바로 지금의 룩소라고 했다.

이집트 여행중 우리 일행은 매일 아침 함께 모였다. 그날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카이로에 도착한 후 우리가 처음 모여 예배를 드렸던 곳은 카이로 근교에 있는 작은 동굴이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후 얼마 안 되었을 때 고약한 헤롯 왕의 박해를 피해 요셉이 어린 예수와 마리아를 이끌고 피난왔던 곳이다. 그 후 헤롯이 죽을 때까지 6,7년 동안 숨어 살았던 그 동굴에서 우리는 깊은 감회에 젖어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크루스 배에는 우리가 함께 모일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마침 때이른 아침 시간에 늘 비어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곳은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술도 마시는 바였다. 우리가 함께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바면 어떠랴 하고 아침마다 그곳에 모여 말씀을 읽고 당당하게 찬양을 드렸다.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서 참 감사했다.

그런데 룩소를 지나던 그날,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한 한 이집트 남자가 우리에게 접근해 왔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배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인 듯했다. 그가 먼저 우리에게 자기를 소개하며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관한 아주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고민을 털어 놓았다. 크루스 안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함께 모이는 우리를 지켜 보았다며, 우리에게서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찾아 왔노라고 이유를 밝힌 뒤 상담을 청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신실하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장로님 몇분이 계셨는데 그 장로님들께서 그 사람의 상담에 흔쾌히 응해 주셨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상담을 끝낸 그 이집트 남자가 올 때와는 달리 아주 밝은 얼굴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인생의 고민과 영혼의 문제를 해결 받은 듯 한결 평안해 보이는 그를 보며 우리도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상담 중 그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믿고 있는 신에 대해서였다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 일행의 모습이 늘 평안해 보였다고 한다. 우리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저녁이면 술을 마시고 춤도 추는 바에 모여서 당당하게 찬양과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의 근원을 몹시 궁금하게 여겼다고 한다. “당신들이 믿음을 지키도록 영혼을 보호하며 인도하는 절대적인 그 신이 누구입니까?” 자신도 그러한 인격적인 신을 찾고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그날 그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참 진리를 찾고 있는 한 영혼을 위해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 쓰임 받을 사람을 준비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계획대로 일하고 계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 주셨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빛을 세상에 반사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확인시켜 주셨다. 그날 뜻밖에 낯선 땅에서 만난 그 이집트 사람에게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영원한 중보자이시며, 그 예수 안에 참 자유와 평안과 쉼이 있음을 전하신 장로님들을 큰 박수로 격려해 드렸다.

그 사람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알 길이 없지만 그날 그의 심령에 뿌려진 예수의 복음이 반드시 싹트고 자라도록 성령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믿는다. 큰 일을 시작하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끝까지 그 이집트 사람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며 그 땅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빛과 소금이 되도록 도와 주시리라 믿고 기도한다.

나일강 크루스를 마친 후 버스로 갈아 타고 계속 지중해쪽을 향해서 갔다. 아름다운 이집트 여인 클레오파트라의 고향 ‘알렉산드리아’ 를 잠시 들렀다가 ‘고센’ 땅에서 버스를 내렸다. 그 옛날 모세 선지자가 태어나기 약 오백여 년 전에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그의 열 한 아들과 그들의 식솔들을 이끌고 와서 정착했던 ‘숙곳 (Succoth)’ 을 방문했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앞에 펼쳐진 그곳은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황량한 들판이었다. 한때 풍요로웠던 옛날을 말해 주는 듯 부서진 신전 기둥 몇 개가 벌판 여기저기에 뒹굴고 있었다.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이 정착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에서 가까운 그곳에 당시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자신의 열 한 형제와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정착시켰다고 구약 성경이 말씀해 주는 바로 그곳에 양은 한 마리도 없었다. 대신 허름한 집 앞에 염소 두어 마리가 깨진 물통 곁에 매여 있는 모습이 퍽 쓸쓸도 하고 적막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지중해 연안에 서서 아득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햇살에 부서지는 눈부신 파도와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문득 내가 서있는 곳이 참으로 낯설다는 느낌에 와락 외로움이 몰려왔다. 마치 지구의 한복판에 작은 점처럼 내가 서있다는 두려움이 한 순간 나를 엄습했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와 산을 넘어 지구의 반을 되돌아가야만 있는 내 집이 몹시 그리웠다.

영국의 런던을 거쳐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긴 여행으로 고단해진 몸을 쉬고 있는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 주셨던 약속의 말씀이 떠울랐다.
“내 아버지 집(Mansions)에는 쉴 곳이 많단다. 내가 먼저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마련해 놓을 것이다”(요 14:2).
어수선한 세상에 있는 자그마한 내 집도 피곤한 심신을 쉴 수 있어서 이처럼 감사한데, 하물며 힘든 세상 살면서 지친 우리에게 영원한 쉼을 주시려고 평화로운 천국에 안식처를 마련하셨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에는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아름다운 안식처(Mansion)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쉬리라! 할렐루야! 몸은 피로했지만 영혼을 감싸는 위로는 한이 없었다.(2008년 2월, 10일간 이집트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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