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충남 논산 육곡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는 시집 오셔서 딸 둘을 낳고 살면서 세 번째 나를 가지셨을 때였다. 그 마을에선 일주일에 몇 번 꼭 종이 울렸다.  새벽에도 종이 울리고 아침에도 울리는 종소리가 궁금하여 냇가의 빨래터에서 어머니는  이웃 아주머니들께 “저 종소리는 뭣 때문에 저렇게 울리는 거예요?” 라고 물으셨다. "아, 금산댁, 그건 교회에서 나는 종소리인데 , 사람들 교회 오라는 거예요“ . “아 그래요? 나 같은 사람도 교회 가도 되나요?”. “그럼요. 아무나 가도 되지요”. 어머니는 궁굼증이 풀렸고 교회에 가면 좋다는 얘기를 막연히 듣게 되었다.

어느날 오후, 교회 권사님 한 분이 집으로 찾아 오셔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교회에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셨고, 어머니는 임신중에 평생 처음 교회에 나가시면서 예배 드리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시게 되었다. 결국은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주일에만 가시던 교회를 수요일 저녁예배, 구역 예배, 새벽기도에도 가시게 되었다. 그러면서 배운 말씀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셨고, 결국  십일조도 하기 시작하셨다.

밭에 각종 채소를 기르실 때는 철마다 처음 열리는 채소를 모두 잘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없으니까 목사님 댁에 갖다드리라고 우리들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때로는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면 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십일조 생활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천국 소망 주신 것이 너무도 귀하고 귀해서, 늘 감사하면서 사셨고, 늘 찬송하면서 사셨다. 삶의 풍랑이 거세게 일어도 그저 믿음으로  감사하셨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 아기 때도, 어렸을 때도 계속 엄마를 따라 다녔다. 유치원 때부터는 제법 어린이 찬송도 잘하고 , 성경 구절도 외우며 교회 생활이 즐거웠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통해 십일조 신앙을 배우고 실천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약국 사업이 망했다. 약국이 잘 될 때에도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느라 엄마와 우리들을 잘 돌보지 않으셔서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데, 빈털터리로 돌아오신 이후에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대학에 갈 형편이 아니었다. 사춘기의 나는 크게 실망했다. 절망이었다. 예비 고사라도 볼 생각으로, 또 대학 입학 시험이라도 치럽 볼 생각으로 논산 센 폴(Saint Paul) 여고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시골의 고등학교에서 서울의 대학에 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입학 시험에 합격하기도 힘들었지만, 합격해도 입학금, 학비, 생활비, 용돈 등 돈이 많이 들어 입학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고민과 절망으로 애를 태우고 있던 중, 출석하던 논산제일 장로교회에서 부흥회를 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던 터라 저녁시간의 외출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부흥회에 꼭 가고 싶어서 사감 수녀님께 찾아가 간곡히 요청하여 특별 외출 허락을 받아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부흥강사 목사님은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지만, 특히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마태복음 7장 7절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이었다. 또한 예레미야 33장 3절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는 말씀이었다.

전에도 들어본 말씀이었지만 그때 내 처지에 딱 맞는 말씀이어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그 날부터 .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문을 두드리라고 하셨으니 하늘 문을 두드리며 구하고 찾은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 대학 가고 싶어요.우리 부모님은 저를 대학 보내줄 형편이 안 되지만 대학에 꼭 가고 싶어요.”  쉬는 시간, 아침 시간, 점심 때 등, 틈틈이 기도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당시 미국에서 평화 봉사단으로 우리 학교에 와서 영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어느 대학에 갈 예정이냐” 고 질문하셨다. 영어 회화가 잘 안 됐지만 “대학에 가고는 싶은데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지금 나를 대학 보내실 형편이 못 됩니다” 라고 했더니 안됐다는 표정을 하고는 교무실로 가셨다. 그로부터 2.3개월이 지났을 때쯤, 같은 반 친구가 선생님이 너를 찾으시니 교무실로 가 보라고 했다. 갔더니 한국인 영어 선생님이 미국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역해 주셨다. “얘야, 이 미국 선생님이 네가 공부를 잘하는데 대학갈 형편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하셨대. 그 친구 분이 네가 대학에 입학만 하면, 4년 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다 대주신다고 했대!”

내 귀를 의심했다.다시 여쭈었다. 똑같은 대답이었다. 뛸 듯이 기뻤다.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였다.  어머니의 변함없는 믿음의 기도와 변함없는 십일조 생활의 축복을 내가 받은 것이었다. 4년 동안 모든 학비와 생활비, 용돈, 책값을 포함한 엄청난 장학금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분을 통해서 주신 장학금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친구가 아니고 바로 그 선생님이 학비를 대 주신 것이었다. 그 당시 최고의 장학금은 학비 면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장학금은 최고의 장학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 그때 “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구나. 십일조 생활을 하면 복주시는구나” 하는 것을 체험으로 배웠다.

결혼 후, 첫 아이 희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를 키우면서 십일조 생활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는 듯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이므로, 우리는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새해 첫날 세배를 가르치고 세배값을 주면서도, “희보야, 십일조는?” 하고 물었다. 아예 돈을 줄 때 십일조를 떼기 쉽게 잔돈으로 바꾸어 주었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오셔서 용돈을 주시거나, 일가 친척들이 용돈을 주셔도, 항상 십일조를 떼어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가르쳤다.  손님들이 오셔서 주신 용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는 집안의 심부름, 작은 일거리들을 맡겨서 일을 하면 돈을 주고 자기가 번 돈과 매주 주는 작은 용돈에서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도록 가르쳤고, 고등학교 때는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때는 주급에서 십일조와 헌금을 구별하여 바치도록 가르쳤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을 보시며 많은 것을 축복해 주셨다. 희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내셔널 메릿 장학금(National Merit Scholarship)과 닥터 필립스 장학금(Dr. Phillips Foundation Scholarship)을 받았다. 입학한 대학인 캘리포니아 공대(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에서도 베스퍼 장학금(Vesper's Scholarship) 2만 불 이상을 받게도 하셨다. 대학원의 박사 과정에 들어갈 때에는 학비와 생활비 전체를 장학금으로 주셔서 대학원과 Ph.D 과정을 마칠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그 후 하바드 대학 메디컬 스쿨에서 박사후 연구 과정도 마치고 2년후 다시 졸업한 학교 켈텍으로 돌아오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최고의 장학금뿐만 아니라, 최고의 축복을 항상 예비해 주셨다. 장학금으로 받는 생활비에서도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나님께 드렸다. 몇 개월만 십일조를 안 내면 좋은 노트북 컴퓨터를 살 수도 있었지만,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매달 십일조를 안 내면, 차도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겠지만, Ph.D 졸업때까지 이곳저곳 부딪혀서 망가진 낡은 차를 끌고 다녔다. 그래도 항상 운전할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듣는 아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8-10).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