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아버지, 아내를 잃은 고독한 노인,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만의 삶을 꾸리는 일이 영 어설픈 남자 프랭크 구드(로버트 드 니로)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엄마가 죽은 후 모처럼 네 자녀와 한 자리에서 다정한 식사를 하기 위해 집 안팎을 쓸고 닦고 장을 보는 등, 아내의 행적을 따라가며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자식들이 한결같이 바빠서 집에 올 수 없단다. 맥이 빠진 아버지는 두 딸과 두 아들을 직접 찾아가 놀래켜 주기로 한다. 건강 문제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고 약을 늘 지니고 있어야 하지만, 버스와 기차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기로 결심한다.

전화선에 피복을 입히는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해온 아버지, 일과 자식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세월이 가져온 변화가 낯설기만한 아버지의 여행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덴버에서 뉴욕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갔건만 화가가 되었다는 큰아들 데이빗이 집에 없는 것이다. 작은 여행 가방 하나 들고 뉴욕에서 외톨이가 된 아버지는 아파트 근처의 화랑에 걸린 아들의 그림에 오래오래 눈길을 주다가 돌아서야 한다.

다음 방문지는 시카고이다. 광고업에 종사하는 큰딸 에이미는 현대식 고급 주택에 살고 있다. 손자가 아파 집에 못 왔다는 변명과는 달리 손자는 멀쩡하고 손주와 사위의 관계는 싸늘하기만 하다. 큰딸은 바쁘다는 핑계로 그 다음날 아버지에게 가라고 한다.

아버지가 이동하는 장면에선 전신주와 전선의 풍경이 클로즈업된다. 아버지의 일감이기도 했고 지금 가족들 소통의 유일한 수단이기도 한 전선이 끝없이 흐른다. 전화선이 클로즈업되면서 아버지의 여행을 알게 된 자식들이 바쁘게 서로 말들을 맞추는 소리들이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데이빗에 관한 일을 아버지에게 알려선 안 된단다. 아버지를 놀라게 해선 안 된단다...

아버지는 음악가가 되었다는 둘째 아들의 연습장을 찾아가는데 지휘자인 줄 알았던 아들이 큰북을 치고 있다. 아들 역시 저녁에 연주 여행을 떠난다면서 속이 많이 상했지만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등을 강제로 떠민다.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라스 베가스를 향한다. 시차 때문에 버스를 놓쳐 대형 트럭을 얻어 타고, 지하도에서 마주친 청년에게 돈을 주려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그 바람에 심장약통이 박살나 버리는 등,  우여곡절끝에 무용수가 된 막내딸 졸리를 찾아간 아버지는 완연히 지친 기색이다. 이번에는 딸이 붙들어도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서두른다.

자식들에게 일일이 하얀 봉투를 건네고 헤어지기 전에 행복하냐고 물었던 아버지. 행복하다고, 괜찮다고 답하는 아이들에게 미소 지으며 사진 몇 장에 그들 사는 모습을 담으려 애쓰던 아버지가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건강 상태인데도 비행기를 타겠다고 고집한다. 결국 비행기 안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만다. 자식들 잘 되기만을 바라고 뒷바라지에 일생을 바친 아버지의 눈에 비친 자식들은 하나같이 변변치 않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감추고 있지만 아버지는 안다. 아이들은 그저 마음으로만, 일을 통해서만 자식을 사랑해온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릴 자신이 없다. 잘 되었을 거라 믿고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엄마는 무슨 고민이든 들어 주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는 자녀의 안정되고 성공된 미래를 위한 해결사 노릇만 해왔기에...

어쨌거나 심장마비 때문에 자식들이 다 모인다. 아버지는 진실을 알려 달라고 한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고 한다. 둘째딸이 남편과 헤어졌다는 것도, 음악가 아들에게 연주 여행 스케줄이 없다는 것도, 셋째딸이 미혼모인 것도 다 눈치챘다고 한다. 그런데 데이빗이 어디에도 없다. "왜 모두들 괜찮다고만 하는 게냐? 데이빗은 어디 있느냐?"  마약의 다량 투여로 멕시코에서 죽었다고 마지못해 털어놓는 아이들의 말을 아버지는 믿지 못한다.

아버지의 가슴에는 아이들과 같이 살던 시절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  꿈도 살아 있고 가능성도 열려 있는데, 그때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가 뒷받침해 준 건 어디로 가고, 무엇이 이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건가? 그럼 그 문제는 뭐였던가?  엄마를 사이에 두고 너무나 멀리 자식들과 떨어져 있었다는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깜짝 방문중에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건네준 하얀 봉투에는 오래 전의 가족 사진과 성탄절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퇴원한 아버지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장을 보고 트리를 사고 청소를 한다. 행복의 가면 뒤에 진실을 숨기고 아버지 곁에 다가오지 못한 아이들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화랑에 가서 아들의 하나 남은 그림을 가져온다. 

전선과 전신주가 담긴 풍경화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데이빗의 사랑을 읽는다. 옛 추억이 떠오른다. “무엇이 되고 싶니?"  "painter요." "이눔아! 벽에다 페이트칠이나 하면 개들이 오줌을 갈길 거다." "그럼 화가가 될래요." "그래, 그래, 화가가 되어야지.” 화랑의 여주인은 데이빗이 세상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표현했다고 말해 준다.

 
아버지는 성탄절 식탁에서 모두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 괜찮다."  "우리 모두 잘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이 바로 " Everybody is fine."이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출연한 1990년 이탈리아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라 한다.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어 주고 행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족,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 로버트 드 니로의 외롭고 조금 슬퍼 보이는 여행을 눈으로 동반하면서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같이 구경하는 막내에게 씩씩한 엄마이고 싶었다. 잉? 이것도 행복을 가장하는 건가?  하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영원한 엄마인데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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