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단 한 번 교회의 전 성도들이 야외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기로 예정된 주일에 하나님께서 화창하고 좋은 날씨를 주셨다. 이곳 중부의 날씨는 예측하기 힘들 만큼 변덕스러워서 전날 오후까지만 해도 비가 오락가락했기에 혹시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밝은 햇살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말이 야외이지 실상 우리가 간 곳은 도시 한가운데 있는 공원이었다. 그렇더라도 한창 녹음이 우거진 크고 작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꽃들이 뿜어내는 상큼한 향기를 마시며 창조주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감사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참으로 귀하다.

유치부의 작은 아이들에게도 그날은 특별한 날이다. 교실에서 성경 말씀을 배울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빛과 어둠과 이 세상을 만드셨다고 귀로만 듣고 그림으로 보기만 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All Mighty God)의 실력을 진짜 믿게 되는 현장 실습의 날이기도 하다. 모처럼 답답한 교실을 떠나 넓은 풀밭에서 한껏 마음이 부푼 아이들은 진작부터 바람을 타고 새처럼 하늘을 날기라도 했는지 모두 상기된 모습들이었다. 평소보다 짧게 찬양과 말씀 공부를 마치고 놀기로 했다. "자, 두 명씩 짝을 찾아서 팀을 만들어 볼까?" 친구와 둘이 한 팀을 만들고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배웠으면 했다. 또한 그 게임을 통해서 내 중심이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아이들 안에 자라 주기를 기대하면서 준비한 게임이었다. 재빠르게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를 찾는 아이들 틈에서 찬이가 내 눈에 띄었다.

"Debbie, Would you be my partner?" 저쪽에 혼자 서있는 데비(Deborah)를 향해서 찬이가 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어려서 키도 작고 연약해 보이는 데비는 늘 말수가 적고 수줍은 편이다. 그런데 찬이가 자기보다 훨씬 작은 데비를 선뜻 택하기로 마음을 정했나보다. 나는 내심 놀랐다. 얼른 데비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저만치 혼자 서있던 데비의 얼굴이 환해지는 듯했다. 그리고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찬이의 손을 잡으려고 찬이 쪽으로 다가왔다. "OK! I like to be your partner!" 데비는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찬이와 데비를 보다가 문득 지난 주일에 배운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사도행전 3:1-10에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러 함께 성전에 올라 갔을 때, 마침 성전 문 잎에서 구걸하던 한 앉은뱅이 불구자를 만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돈을 구걸하는 그 불쌍한 사람에게 줄 돈은 없었지만, 예수의 이름에 의지해서 오랫동안 불구였던 그의 발과 다리를 고쳐 준 사건이다. 그날 공부를 끝내면서 주중에 어디서든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만나면 오늘 배운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해 보라고 숙제도 내주었다. "너희들도 학교에서나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해야 해. 그리고 함께 놀 때는 서로 양보하고 도와 주는 좋은 친구가 되면 예수님께서 그런 너희들을 보시고 정말 기뻐하신단다." 아이들을 격려해 주며 오는 주일에 자기의 경험을 반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보자고 약속했다.

찬이가 파트너로 택한 데비는 몸이 불편해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물론 아니다. 좀 수줍은 편이라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앞에 나와서 노래를 한다거나 성경구절을 암송하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찬이가 그런 데비를 눈여겨 보고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다. 찬이가 오늘 지난주에 배운 것을 실천에 옮겨 본 것 같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활발하게 잘 뛰는 짝을 택했는데 늘 그늘에 숨어 사는 듯한 데비를 선뜻 자기의 파트너로 택한 찬이가 기특했다. 요즘 세상은 소외되고 뒤처져 있는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따뜻한 말과 사랑의 손길을 주는 마음이 메말라 있기에, 데비를 짝으로 택한 찬이가 더욱 돋보였고 사랑스러웠다.

첫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축구공만한 큰 공을 납작한 쟁반 위에 올려놓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붙잡고 함께 뛴다. 그리고 목표물로 세워 둔 빨간 깃발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면 점수를 얻는다. 빨리 뛰다가 공을 땅에 떨어뜨리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고 점수도 깎인다. 뛰는 속도를 상대방에게 맞춰야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뛸 수 있다. 내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짝을 배려하고 그에게 보조를 맞추면서 서로 협력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했다. 데비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큰 찬이는 데비보다 훨씬 잘 뛴다. 데비에게 보조를 맞추다 보면 결국 찬이 팀이 좋은 점수를 받을 기회가 적을 것이 뻔한데...? 데비가 자기만큼 빨리 뛰지 못한다는 것을 찬이는 알고 있었을까??? 그럼에도 찬이와 데비 팀은 나의 짧은 생각을 넘어 끝까지 참착하게 잘 해냈다.

그 다음은 두 눈을 가린 짝을 데리고 세워둔 목표물까지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게임이었다. 눈을 가리지 않은 친구가 두 눈을 가린 짝이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물론 빨리 뛰어야 하지만 너무 빨리 뛰다가 눈을 가린 짝이 넘어지면 돌아오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고 점수도 잃게 된다. 다칠 수도 있다. 자기 짝이 나무나 돌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상대방의 눈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행여 둘이 다 넘어져서 다칠까봐 응원하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Be careful! 조심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행스럽게 아무도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고 즐겁게 모든 게임을 마쳤다. 모두가 일등이었고 상을 받았다. 끝까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열심히 뛰어 준 데비를 대견한 듯(?)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는 찬이의 작은 가슴에 핀 커다란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장하다. 찬이!" 하시며 박수를 보내신다. 하루 종일 아이들 곁에서 응원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예수님께 정말 크게 감사드렸다.

실속을 차려야만 살아남는다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 아이들의 마음은 세상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예쁘게 자라 주면 좋겠다. 에베소서 4장 32절 찬송을 늘 부르면서, 인자하게 돕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덕을 갖춘 크고 장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로 자라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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