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누구에게나 고정관념이 있게 마련입니다. 고정관념은 그냥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고 학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한 사람의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살아온 방식과 모든 경험을 반영합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한 개인의 존재는 사회라는 매트릭스를 기초로 배아되고 성장하는 것이기에,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해 주는 교육, 경제, 정치 등 모든 문화적 제도틀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접하고 있는 모든 역사적 기록이나 사실로 믿고 있었던 사건들은 특정 시대와 공간내의, 승자들에 의한 표기였기에, 이미 그 기록 속에 일방적인 편견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제한되고 한정되어 있는 각 민족의 문화적 제도틀 속에서 생성된 특정 사실이나 진실의 개념은 시작된 틀이 한정되어 있기에 그 틀 너머에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에 너무나도 많은 또다른 입장과 더 나았었을 수 있었던, 더 많이 조명되고 계승되어야 했던 가치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승자들에 의해 무시되고 제거되어 버린 진리들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사라져 버리고 무시되었던 생각, 가치관들은 현대의 문화와 연구 속에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사극 드라마 속의 여러 인물들에 대한 조명, (과거에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악역으로만 비춰진 많은 인물들의 사정과 조명받지 못했던 뛰어난 능력들, 철저히 무시되고 사회적으로 기득권이 없었던 여성들의 파워) 그리고 유교적 주자학의 테두리 속에서 엄격히 지켜져 왔던 계급제도와 당시 사회적 제도의 폐단 등이 다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과거의 한 사건들이 보는 이의 시각과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으니, 이런 작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입장만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지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은 바로 이런 불완전하고 제한된 범위에서만 그 옳은 효력을 발생합니다. 이렇게 뻔한 한계성을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다면 이런 불완전한 잣대를 가지고 상대를 비방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이 설교를 준비하다 사용했던 예화가 떠오릅니다. 밭이랑을 예쁘고 단정하게 내기 위해서는 건너편 밭 끝에 움직이지 않는 푯대를 세워두고 그 푯대를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푯대를 어기적거리는 소의 엉덩이에 맞춘다거나 건너편 새참 나르러 온 옆집 아가씨의 허리춤에 맞춘다면… 뭐 농부의 입장에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결과만을 보게 되겠죠.
교회의 제도나 사회의 모든 법들도 우리의 삶 속에서 참고는 될지 모르지만 그 자체가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필요나 욕망을 바탕으로 유한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유용하겠지만 이런 것들이 절대불변하는 것들이 될 수 없고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나, 사회를 비난하고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기초적 반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너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단지, 이러한 기초적 반석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그래서도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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