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시간이 생겨 의자에 앉으려다 말고 문득 벽시계를 힐끔거린다. 11시 45분. 외면하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길은 어느새 시계추를 향하고 있다. 어머니께 전화할 시간이다. 휴대폰을 꺼내어 키넘버를 누른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전화번호가 닿는 곳에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소천하신 후 몇 개월가량은 혼자서 이런 실랑이질을 반복했다. 외면하고 키넘버를 누르고 오열하고...

이런 스트레스가 또 있을까.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고 이제 겨우 한숨 돌리려는 시간대에 휴대폰을 꺼내며 혀를 차곤 했다. 그것은 차라리 굴레였다. 나는 언제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질까. 늘 자유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매일 하루 한 번씩 전화하란다. 막내 동생 집에 사시는 어머니의 명령이었다. ‘부탁’이면 몰라도 ‘명령’이라니! 그것은 너무나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품성을 지닌 엄마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평소의 엄마라면 그냥 “시간나면 전화해라...” 정도였는데, 그즈음 들어 몸이 자꾸 안 좋으시니 마음이 약해지신 걸까. 두 번도 말고 꼭 하루 한 번씩 안부 전화를 하라셨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특히 그 전화라는 거, 마음 내키면 하루에 한번이 아니라 하루 몇 번씩이라도 신명나게 할 수 있다. 금방 하고나서 빠트린 말이 있으면 또 다시 한다. 그렇지만 그 ‘하루 한 번’이라는 조건이 족쇄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수는 없는 일. 마지 못해 휴대폰의 단축키를 누르며 혀를 찬다. 때로 가게 손님에게 붙들려 있거나, 깜박하고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허둥지둥 전화를 하면 “걱정이 돼서 내가 전화를 해보려다 말았다”는 어머니의 은근한 압박이 있곤 했다.

하루 한 번씩은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처음에는 짬나는 대로 전화하다가, 차츰 어느 한 시간대로 굳어졌다. 11시 45분. 그게 내가 가장 편리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세탁소 오전 정리도 대충 끝나고 아침식사도 마쳤겠다, 쾌적하고 텅 빈 자투리 시간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쾌적한 시간에 그 불편한(?)시간이 끼어 들었던 것.

그 시간대가 되면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긴장하신다. 아예 전화기 옆에 진을 치고 앉아 있거나, 불일이 있어도 만사를 제쳐두고 전화기 옆으로 부랴부랴 달려가신다고 했다. 휴대폰이 없었던 어머니에게 그 시간을 지키는 일이 나보다 더 성가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어느 날 어머니는 선심이라도 쓰듯 조용히 말씀하셨다.
“바쁘면 전화 하지 마라. 시간나면 해라.”
“언제는 또 하루에 한 번씩 하라며?”
“내가 생각이 짧았다. 내 생각만 했구나.”
“그럼 엄마, 이제는 매일 전화 기다리지 마. 언제든 내가 편리한 시간에 할게.”

그런 대화가 있은 후, 나는 ‘하루 한 번씩’과 ‘11시 45분’이라는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웬걸, 그 자유는 이틀을 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하셨다.
“네가 어젯밤 꿈에 보이더구나. 아무 일 없냐?”
정말 못 말리는 노친네다. 해서 서로의 편리를 위해 태동한 모녀회담 골자는 자동 무산되고, 우리는 또 다시 11시 45분으로 돌아갔다.

하루 한 번씩 전화를 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안부가 걱정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생들처럼 생각나면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하다가 또 며칠씩 잠잠해지는, 그런 자유와 융통성이 부러웠다. 나는 어쩌다 이 11시 45분의 의무에 묶이게 되었을까?

통화 내용이래야 별거 아니었다. 건강이 제일이란다, 부디 건강해라, 저녁에 테레비 보지 말고 일찍 자거라, 늘 기도 생활 해라 등등의 잔소리로 점철되는 어머니와의 통화는 도무지 비생산적이고 흥미가 없었다.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대화는 늘 그랬다. 꼭 녹음기를 되감아서 틀어놓은 듯했다.

슬슬 짜증이 났다. 나는 왜 하루에 한 번씩 이처럼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엄마는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요청으로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는가... 주변에서는 둘도 없는 효녀라고 칭찬이 자자했지만, 나는 그렇게 이기적인 딸이었다.

어머니가 아직 한국에 계실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렸다. 여기서 주일 아침이었으니 받는 쪽은 주일 저녁이 되었다. 주일 저녁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전화기 앞에 앉으셨다는 어머니(당시 주일 저녁 예배는 3~4시 사이에 있었다),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친 후 교인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볼일이 있어도 다 뒤로 미루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하셨다는 어머니에게 그 시간은 멀리 떨어져 사는 딸과 대화한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으리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시간적 여유 때문이었는지, 주일 아침은 내게도 즐거웠다.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질 무렵의 통화는 상쾌했고, 서로의 소식과 안부를 묻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 살고 있는 노모와 하루 한 번, 그것도 정해진 시간이라니! 이건 좀 심하다고 재고를 생각할 무렵, 조그만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그날도 시간이 되어 단축키를 누르는데 늘 기다렸다는 듯이 수화기를 들던 어머니가 왠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이층에 계시다가도 전화벨 소리만 나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부랴부랴 계단을 내려오신다는 어머니셨는데 웬일이지? 10분쯤 있다가 다시 해봐도 여전히 묵묵부답. 자동응답기만 앵무새처럼 흘러나왔다. 왜 전화를 받지 않으실까. 온갖 불길한 생각이 다 들었다. 힘이 없어서 못 일어나시는가? 혹시 계단을 내려오시다가 넘어진 건 아닌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네일 가게에서 근무하는 동생의 휴대폰을 눌렀다. 동생 말이, 아침에 몸 상태나 기분도 좋았고 식사도 많이 하셨으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해보았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다정한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동생 역시 걱정이 되는지 집에 한 번 가보고 오겠단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휴대폰이 울렸다. 동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우선 엄마는 무사하니 안심하란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4살짜리 꼬찔찔이 조카가 자꾸 칭얼대서 뒤뜰로 데리고 나가서 놀았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가 어느 날 정말로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게 되리라는, 어머니가 은택이(조카)와 마루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정물 같은 풍경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깨달음이었다.

휴일이나 주일 오후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항상 막내 동생 집에 기거하시는 어머니를 뵈러 가곤 했다. 그곳에는 항상 눈에 익은 풍경이 있었다. 막내 동생의 다섯 살 된 늦둥이 은택이와 아이의 외할머니인 내 어머니가 서로 껴안고 앉아 있는... 언젠가는 이 풍경도 사라지겠지. 할머니는 떠나고 은택이 혼자 남겠구나... 생각하며 가슴을 졸이긴 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도 며칠 가지 못했다. 나는 다시 내 아까운 휴식시간에 대한 미련 때문에 인상을 쓰며 휴대폰을 집어 들곤 했다.

이제 어머니는 떠나고 나는 오전 11시 45분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빛나는 자유, 돛을 휘날리는 자유가 있다. 그 시간대에 맞추어 식사를 빨리 할 필요도 없고, 다른 중요한 통화를 뒤로 미루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부자유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또 다시 어머니와 통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좋겠다. 한 번만 더 어머니와 정해진 시간대에 통화할 수 있다면 세상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고 징징거린다.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의미 없는 대화라도 좋겠다. 불평하는 소리, 어떤 잔소리라도 달게 받겠다. 어머니가 발병한 지 한 달만에 이렇게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실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어머니는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걸 어찌하랴!

세탁소 손님 한 분이 힌트를 주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처럼 그 시간대에 휴대폰을 꺼내란다. 자신도 그런 과정을 겪었는데, 아주 효과가 있단다. 어머니가 내게서 아직도 듣고 싶어 하시고 또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니까 휴대폰에 조용히 귀기울여 보라고. 그리고 육신을 잃은 어머니에게 아직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일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다. 어머니에 관한 일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는 아픔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언제쯤이면 나는 후회나 아픔 없이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될까?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