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 되면 항상 눈이 쌓여 있는 시카고에 살던 어느 부부가 플로리다로 휴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출장 중이라, 남편이 플로리다에 먼저 도착하여 호텔에서 기다리면 아내가 바로 그 호텔로 오기로 했습니다.

남편이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에게 잘 도착했다는 안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급히 타이핑을 하느라 아내의 이메일 주소의 철자 하나를 잘못 입력하여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편이 보낸 이메일은 며칠 전에 할아버지를 사별한 할머니에게로 전송되었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던 할머니가 이메일을 열어 본 순간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더니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할머니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자녀들이 본 그 이메일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방금 체크인 했소. 내일 당신이 오기만 하면 되오. 추신: 예상했던 대로 여긴 무척 뜨겁구료.” 할머니는 며칠 전에 죽은 할아버지가 지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메일을 보낸 것인 줄 착각하고 놀라 기절한 것이었습니다.

6시간을 운전한 트럭 운전수가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잠이 들자마자 운전수는 누군가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문을 열고 보니 근처를 조깅하던 사람이 몇시인지 물어왔습니다. 운전수는 “4시 30분이오”라고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잠이 들려는 순간 누군가가 또 차문을 두드렸습니다. 잠결에 문을 열어 보니 역시 지나가던 사람이 몇 시인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운전수가 “4시 40분!” 이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운전수는 잠깐이라도 눈을 더 붙여야겠기에, 더 이상 수면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차문에다가 “나는 지금 몇 시인지 모름”이라고 써붙여 놓고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다시 누군가가 차문을 두드렸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이 화가 난 마음으로 문을 열어 보니, 지나가던 또 다른 사람이 아주 상냥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5시 정각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아무리 좋은 소식이나 말이라도 잘못 전달되면, 무용지물의 단계를 넘어, 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말, 기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제 때에 그리고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바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때에 그리고 필요로 하는 대상자에게 바로 전달되었는데도, 수신자가 왜 그 소식이 자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왜 그에게 지금 그 소식이 필요한지 알려 주든지 그가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때, 정작 그 대상자는 왜 그 기도와 복음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전혀 모르고 있다면, 우리는 그가 필요성을 알고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든지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주시면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복음이 필요한 right person과 right time을 정확히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일은 그 right time과 right person을 알기 위해,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하나님이 주신 기쁜 소식을 받으셨으며, 그것을 누리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기쁜 소식을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해 주고 있습니까? 그 복음이 필요한 right person과 right time을 찾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혹시 한 번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 본 적이 없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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