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내에서 타부(Taboo)시 하는 몇몇 용어들이 있습니다. 상대주의, 다양성 등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용어들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개념이 있습니다. 현재를 포스트 모던한 시대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이 아리송하면서도 애매한 용어인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제한된 지면과 공간에서 이 용어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그 윤곽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포스트 모던한 문화와 시대 속에 살고 있으면서 이 용어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용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비판하며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아무리 비판의 열정과 논리가 정연하다 하여도 헛수고일 뿐입니다. 기초가 이미 뒤틀려 있으니 참담한 결과는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잘못되고 뒤틀린 결과인데도 기어코 부둥켜 안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기독교 잡지에서 한 영화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하는 내용의 글을 읽고 조금 의아했습니다. 포스트 모던한 영화이기 때문에 보아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포스트 모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절대 악(evil) 정도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상대주의와 다양성이라는 용어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행동 양식을 통해 그들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용어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 오는 문제들을 함께 다뤄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라고 하면 보통 집안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원래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대외적으로는 건축 분야에서 생겨났습니다. 한국적 주거 상황에서 집 바깥에 위치해야 할 뒤처리 장소가 집안으로 들어오게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습관과 전통이라는 사고의 틀을 뒤집어 그 틀 밖에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런 일들을 가능케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포스트 모던이란 용어가 삶 속에서 실현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은 일방적인 통신 시스템 구조에서 쌍방적(화자와 독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이면서도 다각적인 관계로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단순히 통신 시스템과 건축물에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삶과 주위에서 속속 드러나는 이러한 사고의 전환들은 우리들의 삶의 방법과 생각의 구조를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변화나 새로운 가능성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의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우리가 상대하고 배척해야 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 시대의 삶의 양식을 보여 주는 일종의 문화적 코드인 셈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란 말입니다.

우리를 물고기로 비유해 보면 문화적 코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물인 셈입니다.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물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특징들이 있죠? 좋은 점도 있을 것이고 나쁜 점도 있을 것입니다. 좋은 특성 혹은 나쁜 특성만 따로 떼어 놓고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인 물 그 자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좋다고, 혹은 나쁘다고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듯이, 우리가 거부하고 달가워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살고 있으며 살아야 합니다.

‘너무 포스트 모던해서 봐선 안 된다?’ 이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 중 일부가  포스트 모더니즘 전체를 대변한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특징의 의미도 조금은 왜곡해서 알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나 사상, 문화적 코드로서 설명을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항상 나를 재촉하였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내 스스로가 아직 확실하게 이게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겠고, 그렇기에 부족한 내 설명과 이해들이 쉽게 공격 당하고 비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표현하는 그 순간, 내 표현들은 편견을 지적하는 또 다른 편견이 되어 버릴 수도 있고 이미 범람하는 거대한 현대 사고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조금씩 표현해 보기로 했습니다. 내 머리 속에 그저 고여 있는 생각과 지식이라면 끊임 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발전하는 문화적, 학문적 흐름 속에서 도태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엉성해서 얻어맞기도 하고 때론 과감히 돌팔매질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한 자리에서 부패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계속 발전해 나아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어느 한쪽에 국한된 편협한 생각보다는 관계성을 고려하며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는 시각을 견지해야 합니다.

이렇듯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조금 더 마음이 열릴 수 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을 대변하는 상대주의와 다양성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사고의 전환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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