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님이 쓴 글을 읽고 다른 이들도 그 글로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교회 카페에 퍼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움측으로부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알림을 받음과 동시에 그 게시물이 없어졌습니다.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글이 무단 게재되었다고 삭제를 요청한 그 목사님이 섭섭하게 느껴졌습니다.

목사가 신앙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 그 글을 읽고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닫거나 나아가 그 글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면 그 글을 쓴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진 자신의 글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삭제를 요구한 분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글을 쓰고, 삭제를 요구했을까요?

나 아닌 다른 분의 마음이나 생각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분은 자신의 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자신의 글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생각은 오늘날 강화되고 있는 저작권 보호와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섭섭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목사라는 신분을 밝힌 글이라면 그 글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글과는 다르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사적 소유권

사유재산 제도는 로마법에 따라 합법화되었고, 지상의 물건에 대한 사용을 위한 합법적인 접근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제도를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한 것으로 거부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사유재산은 평화의 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불화, 불의와 살인은 사유재산에서 기인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의 소유물을 포기하자. 혹 우리가 소유물을 포기할 수 없다면, 사유재산의 소유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자. 그리고 주님을 위한 여지를 마련하자. 각자가 사적으로 소유한 재산 때문에 각자는 필연적으로 거만하게 된다. 마치 부자의 몸이 태어날 때 그것을 함께 가지고 온 것처럼, 혹은 죽을 때 그것을 함께 가지고 갈 것처럼.... 부자의 몸이 가난한 자의 몸을 내치고 있다."

로마법에 의해 합법화된 사유 재산 제도는 1689년 당시 세계의 최대 열강이었던 영국의 권리장전을 통해 강화되었습니다. 1791년 다시 열강으로 부상하던 미국에 의해 확인되었고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는 그것을 절대적 권리로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진리가 되어 각종 사회적인 문제점들과 폐해들이 속속 드러나도  폐해의 원인이 사적 소유권의 절대적 보장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결코 떠올리지 못합니다.

소유의 본질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은 아우구스투스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는 사적 소유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지만 사적 소유권에 절대권을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소유가 아니라 사랑의 절대권을 주장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힘이 소유의 힘을 능가하는 곳이기에 사랑하는 이들의 필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내어 놓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서 초기 교회에는 아무도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뿐만 아니라 당시에도 세상과 아주 다른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핍절한 사람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맘몬의 권세가 더욱 막강해지고 더욱더 은밀해졌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소유권에 대한 인식은 경제 규모의 성장과 더불어 더욱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확고부동한 사회의 중심축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  만물의 절대적 소유자이신 그분에 대한 인식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인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성경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고 말합니다. 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 아멘"(롬 11:36)이라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성경 말씀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청지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이 만일 청지기라, 자신의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임을 생각하고 모든 소유를 주인의 뜻대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라는 우리의 호칭에는 그분께서 물질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의 소유자시라는 고백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실제 소유자는 그리스도인 자신이라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소유에 대한 권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의 소유를 사용해야만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들이며 순례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 만물의 유일하고도 참된 주님이시며 소유자이신 그분 앞에서 함께 사는 종들입니다. 한 분이신 주님의 함께 사는 종들로서 공동 운명으로 부름 받아, 다른 사람 위에서 군림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공동의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물질적 재물에 대한 인간의 소유권, 즉 지배권은 우리의 모든 순례자들이 이러한 재물의 유용한 이용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소유를 공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소유권을 배타적 관계를 합법화하는 단순한 권리라고 주장합니다. 곧 소유자가 자신의 소유물에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유 관계는 부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소유권에 대한 사고는 인간 개인의 존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계를 단절시키고 윤리적 책임을 무시하도록 만듭니다. 다시 말해, 소유에 관한 세상 법의 개념은 수많은 사람들을 계속적인 근심의 상황 속에서 빈곤하게 살게 하며, 실상은 강도 행위이며 약탈이며 학대인 여러 사회 현상들을 합법화하고 있기에 성실한 인간관계에 고통을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권 개념은 그것의 참된 본질을 우습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소유란 함께 사는 순례자들과 동일한 주님의 함께 사는 종 가운데에서 성실한 인간관계들이 깊어지도록 섬기는 수단이었습니다. 복음은 바로 그 소유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채우고 세상의 부를 나누는 역동적인 기능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게 되는 아무도 핍절한 사람이 없는 사회인 하나님 나라가 세상의 빛으로, 소망으로, 복음으로 다가가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과제입니다.

날이 갈수록 저작권이 강화됩니다. 사적 소유가 법으로 보호되는 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이니 강화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적 소유권의 절대권을 주장하면, 말없이 그리고 사랑으로 그것을 무력화시켜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본연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면서 목사인 사람이 자신의 글의 저작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적 소유권의 절대성을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며 같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형제애를 부정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전1:9).

해 아래 새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절대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내 것은 없습니다. 물질도 지식도 생명도 모두 그분의 것이며, 동시에 그분이 우리와 함께 살도록 하신 형제와 자매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몇몇 이권이나 쾌락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삶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여야 한다. 기꺼이 주 예수를 위하여 감옥에 갇힐 뿐 아니라, 죽기도 하며, 어떠한 고통이라도 받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신은 당신의 생명, 당신의 자유, 당신의 땅, 당신의 생계를 부정할 수 있는가? 감옥에 가는 것이 쉬운가? 당신의 마음속의 정욕을 버리는 것이 쉬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토마스 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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