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짜리 여동생이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오빠, 사랑이 뭐야?”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사랑이란 내 가방 속에 있는 초콜릿을 네가 매일 훔쳐 먹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초콜릿을 계속 같은 곳에 넣어 두는 거란다.” 그래도 동생이니까 모른 척하면서 계속 초콜릿을 넣어둘 수 있는 것이겠지요. 만약 생소한 사람이 초콜릿을 훔쳐 먹는데도 계속해서 넣어둘 수 있다면, 그게 더 진짜 사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증오는 쉽다. 하지만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증오가 쉽고 사랑에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증오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지만, 사랑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삭히는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다른 짝은 희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위한 희생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2011년 12월 24일자 중앙일보에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아이다호 주에 사는 제니 레이크라는 여성이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뇌종양 3기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녀는 홀몸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와 남자친구 네이던 휘트먼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뇌종양 치료를 위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니면 뱃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치료를 거부해야 할지였습니다. 만약 아기를 살리기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한다면 그녀는 눈 앞에 다가온 죽음을 피할 길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고, 항암 치료를 받을 경우에 뱃속의 아기는 당연히 유산해야 했습니다.

제니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아홉 달 동안 몸속의 암과 사투를 벌인 끝에 건강한 아들 채드를 낳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해냈어. 내 할 일을 한 거야. 아기만 안전하면 난 괜찮아.” 제니는 채드를 낳은 지 12일 뒤에 숨을 거둡니다. 아들 채드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전혀 모른 채 현재 아이다호(Idaho) 주의 포카텔로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이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사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헤세드”입니다. “자비” “인자” “선대(善待)” “은총”이라고 번역되곤 하는데, 헬라어로 본다면 “아가페”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 “헤세드”의 사랑은 크게 세 가지 용례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 셋째, 이웃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이 세 용례들을 각각 보여 주는데, 시편 136편 1절에서 26절까지의 경우에는 매절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단어가 “헤세드”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헤세드)가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편 52:8, 역대상 16:34, 역대하 5:13, 에스라 3:11, 느헤미야 9:17, 예레미야 33:11 등 곳곳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헤세드”로 표현합니다.

호세아 6장 6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헤세드”의 사랑을 기록합니다: “나는 인애(헤세드)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헤세드”의 사랑을 다시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헤세드의 사랑이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성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헤세드”의 사랑을 기록합니다: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헤세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룻 2:20).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헤세드)을 베풀리라”(삼하 9:1).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헤세드”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헤세드”의 대상이 누구이며, 방법이 무엇이든지 공통점은 “자기 희생”입니다. 제니 레이크가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불사했던 희생의 사랑처럼,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과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바로 “희생의 사랑”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헤세드의 사랑을 체험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 헤세드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사랑을 전달하고 있습니까?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