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잔치가 시작되었다. 우리들이 태어나고 자란 그 유년의 뜰에서.
좁은 뜨락과 신발 놓는 댓돌, 누르스름한 창호지로 포장되어 기역자로 늘어선 안방과 건넌방, 사랑방의 문살 위, 대청과 부엌과 헛간 그리고 우물가 모퉁이에 매달린 새빨간 석류알에도 먼지 축제의 하얀 깃발이 돛을 올리고 있었다.

‘속에 있으면서도 속되지 않는...’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 속에서 생존하려면 무조건 하얗게 덮어쓰고 볼 일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밀가루 공장 인부들처럼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 북새통 속을 뛰어다녔다. 사과나무에 대한 낭만 하나만을 가지고 서울에서 내려온 은퇴한 부자 양반이 꾸며놓은 집과 과수원을 아버지가 인수하기 전까지 우리 식구들은 매년 가을의 막바지에서 이처럼 처절한(?) 먼지와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그 잔치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아버지를 비롯한 서너 명의 일꾼 아저씨들은 꼭 무슨 화적패모양 결사적으로 탈곡기를 밟아댔고, 그 분위기에 휩싸인 어린 우리들도 전쟁터같이 어수선한 타작 마당을 어른들의 발길에 채이며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어머니와 등골네(등골이라는 마을에서 시집온 새댁)가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타작 마당을 벗어날 무렵이면 탈곡기를 굴리는 일꾼들의 발길에 더 가속이 붙었다. 그래, 그 탈곡기란 놈, 아수라장의 타작 마당을 그 우렁찬 소리로 장악하던 그날의 재래식 탈곡기는 정말 대단한 존재였다. 놈은 생명의 날갯짓을 되풀이하며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을 향해 마구 으르렁댔으니까.

볏짚단으로 집짓기 놀이를 하면서도 우리는 그 날쌘 탈곡기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두 명의 일꾼 아저씨들을 부러운 눈으로 힐끔거렸다. 그러다가 그 중 한 사람이 뒷간에라도 갈라치면 우리는 으르렁대는 기계 앞으로 다투어 몰려들었다. 일꾼 아저씨 옆에 붙어 서서 살며시 밟아 보던 탈곡기. 그러나 금방 튕겨져 나오고 말았다. 그 팽팽한 긴장감과 속도는 자체에 어떤 생명력이라도 지니고 있는 듯 맹렬했다. 도전하고 튕겨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끝에 우리는 드디어 급류처럼 내달리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발이 그것을 굴리는지 그것이 발을 굴리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 부지런히들 밟아라...”
그러한 우리들을 향해 사람들은 느긋한 눈길을 보냈다. 바쁜데 걸리적거린다고, 그 누구도 우리들에게 혀를 차거나 눈을 부릅뜨지 않아서 좋았다. 성질 급한 아버지조차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채 너털거리며 돌아다녔으니까.

자라서 어른이 되고, 고향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분주한 가을 마당 속의 여유와 그 넉넉함의 의미를. 그것은 ‘꿈’ 때문이었다. 땅굴을 파고 길고 긴 동면(冬眠)에 들어가는 겨울나기 짐승처럼, 이제 농부들은 그들만의 안일한 휴가철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매서운 하늬바람 깡추위가 마을 등성이를 스쳐갈 동안 농부들은 그들이 여름 내내 판 땅굴에서 은신할 것이다. 굴속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화롯불에 알밤 톡톡 터트리며 도란도란 세상만사를 논할 것이다.

그 속에는 농한기마다 근처 시골교회들에서 연중행사처럼 벌어지던 부흥집회에 참여해 큰 은혜를 받겠다는 어머니의 작은 소망이 있고, 이번에야말로 동네 노름판에서 한 몫 잡겠다고 단단히 벼르는 우리 집 일꾼 아저씨 등골이(등골네의 남편)의 야심만만한 꿈이 있다. 전형적인 농부였던 아버지의 그저 한겨울 푹 쉬고 싶다는 소박한 꿈도 있다.

그런 마당에 지금 좀 힘들면 어떻고 시끄러운들 대수랴. 게다가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라니! 그 냄새를 타고 어머니와 등골네가 발그레하게 상기된 모습을 타작 마당에 드러냈다. 우리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어머니의 앞치마 자락에 매달렸다. 그런 우리들을 어머니는 성가시다는 듯이 떼어내며 말씀하셨다.
“모두들 오시라고 해라. 저녁(식사) 다 되었다.”

어머니의 한 마디에 탈곡기 소리가 멎었다. 천지는 긴 한숨으로 평정을 되찾았고, 시간은 다시 똑딱거리며 흘러갔다. 사방에서 깃발을 올리던 먼지들이 스크린 속의 슬로 모션처럼 서서히 흩어지며 낙하했다. 기진맥진한 탈곡기가 혼자서 윙윙거리며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이, 대청에서는 풋고추와 보리밥과 된장찌개의 성찬이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박한 밥상이 가을 잔치의 하일라이트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는 내 그리운 유년의 뜨락에서 펼쳐지던 정겨운 풍경들을 내 기억의 창고에서 즐거이 끄집어낸다. 이민의 삶이 고달플 때나 삶의 고갯길을 오르다 숨이 차서 허덕일 때, 야외극장의 대형 스크린처럼 탈곡기 맞은편에 하얗게 펼쳐져 있던 광목천을 떠올린다. 석유등의 조명 아래 세차게 뛰어오르던 낟알들의 춤사위를 기억해 낸다. 까불고 튀고 흩어지고, 우르르 오르다가 다시 떨어지고 쌓이던 생명의 불꽃놀이... 하나의 거대한 산을 쌓기까지 계속되던 그 신나는 생명춤을 생각한다. 그리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우렁차고 신명난 울음을 밤하늘 멀리 토해 내던 재래식 탈곡기의 괴성을 떠올린다.
구르릉 구르릉...

그것은 아직도 이명(耳鳴)처럼 내 귓전을 맴돌고 있다.
힘내세요! 좋은 날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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