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 아버지를 둔 덕에 성장 과정도 편치 않았을 텐데 결국 시신을 염하고 화장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두 번이나 이혼 당한 아픔을 가진 하지원과 이미 루게릭 병에 걸려서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법대 출신의 김명민. 두 사람은 남자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나지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동창이었나 봅니다. 남자가 먼저 여자를 알아 보지요.

엄마의 시신을 곱게 염하고 화장하고 인사까지 곱게 하는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남자가 어머니의 유골함을 무릎 위에 얹은 채로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여자에게 건넵니다. 내 곁을 지켜줄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염도 하고 화장도 해주지 않겠느냐고. 사람들이 시신을 만지는 자신의 손을 무서워하고 더럽다 여기는데 괜찮겠느냐고 여자가 묻습니다. 남자는 그녀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수순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병을 고치고 여자와 사랑하기 위해 남자는 중국으로 건너가 침술 치료를 받아도 보고, 둘이서 어느 성당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반지도 교환하고, 여자는 남자를 치료하려고 엉터리 침쟁이를 찾았다가 오히려 병세가 악화되기도 하고, 루게릭 병은 잔인하게도 남자의 몸을 서서히 마비시키고, 뇌가 죽어가는 병이기에 감정 조절도 잘 되지 않지만 여자에게 미안해서 남자는 폭언을 하고 모질게 굴기도 하고, 화가 난 여자는 남자를 떠나기도 하고,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보기도 하고, 그래도 그래도 서로 사랑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랑 멈추지 않고 여자의 눈물과 남자의 눈물이 항상 교차되고...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남자를 포기하지 못하고 매달리는 여자의 울음.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남자의 눈가로 흐르는 눈물 한 방울에 어느새 내 마음도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받아들인 남자와 여자의 순애보 영화이기도 했지만 식물인간, 전신마비 환자 등 같은 병실에 있는 중환자들을 통해 존엄사의 문제를 제기한 영화인 것도 같았습니다. 직장도 그만두고 돈도 다 날렸건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형 간호에 지칠 대로 지쳐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동생이 있고, 병실에서 아예 같이 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늙은 아내와 중년의 남편이 있습니다. 날마다 부인의 얼굴에 팩도 해주고 가발을 씌우고 웨딩 드레스나 예쁜 옷을 갈아 입히는 지극정성의 남편입니다.

늙은 아내가 하지원에게 그러지요. 이 세상에 가장 먹기 힘든 것이 마음이고, 가장 버리기 힘든 게 욕심이고, 가장 배우기 힘든 게 잘 사는 기술이라고...

하지원은 또 그러지요. 죽어가는 사람인 줄 알고 사랑했는데, 그래서 오늘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자꾸만 내일을 생각한다고...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울지 않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나겠지요. 임종도 못 보고 투병 과정도 지켜 보지 못해 그저 막연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 감상한 영화 속 병실의 환자들 속에서 되살아나는 거였어요. 김명민이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읊조리듯이 저 역시 죄송하다는 말을 자꾸 마음으로 되뇌이게 되더군요.

눈물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또 돌아온 토요일 밤 11시, 엄마와 통화하기로 한 그 시각에 전화를 걸자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젖어 있었습니다. "엄마, 한국 어딘가에서 엄마를 만나러 갈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상시에 달려와 줄 사람도 있을 거야"라고 말하니까, "난 네가 보고 싶어"라고 울먹이셨지요. "엄마,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기도방에 가서 울고, 소원이 있으면 기도방에 가서 하나님에게만 말해. 제발 사람 때문에 서운해하지 말고, 제발 사람 때문에 울지 말아. 엄마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생겨날 거야. 기적이 일어날 거야."

미처 전화카드를 사두지 않아 프로모션 카드로 걸었더니 그 말 끝나기 무섭게 연결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편지라도 써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