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흥부전”이라는 신파조의 목소리에 이어 음질 상태가 좋지 않은 긁히는 소리로 어색하게 “흥부는… 아무... 것... 도... 주... 지... 말아라.” 70년대 초였던가, 가물가물한 기억 속의 라디오 드라마 시작을 알리는 대사가 떠올랐다. 흥부와 놀부의 아버지인 연 노인이 돌아가시기 전 유언을 녹음해 둔 테이프를 장례식 후에 찾아낸 놀부는 재산을 고루 나누라던 유언을 없애고 재산을 혼자 차지하려고 필요한 말만 살려내 뜻이 전혀 문장을 만들었다. 형이 조작한 아버지의 육성을 들은 흥부의“아버지, 저는 어떡하라고요!”라는 절망의 외침과 함께 시작되었던 코미디 ‘신판 흥부전’을 급한 숙제조차 미루고 재미있게 청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코미디에서나 가능한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몇 마디의 말을 빼버리고 앞말을 뒤로, 뒷말을 앞으로 보내니 의미가 전혀 다른 말이 전해진 것이다. 예닐곱 사람이 함께 모였다. 가볍게 농담하며 차를 마셨는데, 몇일 후 잘못 전달된 말로 나는 물론이요, 모여 있었던 사람 모두가 큰 변을 치를 수밖에 없는 난감한 일이 일어날 뻔했다.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무슨 마음을 먹었던지 내 말을 잘못 전달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사람은 내가 분명 나쁜 뜻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등 맞장구를 치고 아주 못된 사람으로 몰아가며 본때를 보여 주자고 뜻을 모았다는 말이 돌아돌아 내 귀에까지 전해졌다.

화나고, 기가 막히고, 그 일에 관련 된 두 사람이 몹시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 중 몇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틀린 말이라는 증언을 해줄 테니 혼을 내주라는 의견을 비쳤다. 나도 사람들을 대동하고 한달음에 쫓아가서 선은 이렇고 후는 저렇다고 따지며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믿는 사람끼리 싸우면...’,‘그렇게 되면 그 두 사람은...’ 하는 마음이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자꾸만 막았다. 그래도 그냥 있자니 같이 있었던,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당할 오해 또한 내 책임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분하고 억울하여 펄펄 뛸 듯한 기분은 좀 가라앉았지만, 없었던 일같이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음부터 주님께 맡겼다면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지만 미숙한 신앙인인 난,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고서야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기도하는 중에 이 일의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인 듯, 내가 모든 걸 끌어안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 허물도 있었다. 백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분명 말한 사람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맞장구치며 문제를 만든 사람 또한 누구인가. 한두 해도 아니고, 15년 넘게 알고 지내던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나를 평했다면 그 나쁜 평도 바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잘못을 알고 나니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의 명령대로 내가 한 번만 죽으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라는 생각을 해낸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앞에서 사과했다. 내 잘못이니 다른 사람들은 해가 되지 않게 그만 덮자고 했다. 잘못 전했던 사람도 의외의 내 반응에 안도했는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러자고 했고 사건은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날 밤, 주님 때문에 한 번 죽었으니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까지 올렸다.

그러나 사건 해결이 된 기쁨도 잠시, 잠이 오질 않았다. 사과의 말 하나 없었던 그들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니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괴로움이 올라와 처음 그 사건을 알았을 때만큼이나 마음이 각박해지는 거였다. 가슴앓이를 한 며칠 후, 마음을 풀고 싶어서 아버지께 전화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말없이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셨다.

“긍게 너 혼자만 잘했다는 소린디!” 아!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이 말씀은 머리를 꽝 치는 듯한 충격이었다.“넌 죽지 않았어. 죽은 척한 거야’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 알려 주시는 순간이었다.

그랬다. 난 주님의 명령에 잘 따랐다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저리 나쁜데, 난 그럴 듯하고 고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경우를 당했던 신판 흥부처럼 “난 어떡하라고요”로만 답하고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순박하고 진실했을 것이다. 내 감정을 자라목 감추듯이 숨기고 커질 것 같은 문제만 가라앉히려 들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른다는 형식만 취하고, 밉고 괘씸한 감정을 키웠던 것이다. 진실하지 못한 인간임이 고스란히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말을 잘못 이해하고 전하는 일밖에 안했지만 회칠한 무덤 같은 난 얼마나 더 큰 죄를 범하고 있었단 말인가.

“날마다 죽노라”던 사도 바울이 높아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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