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고대의 교회(4)

6. 교부들(The Church Fathers)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반(AD 150-250년경) (2)

2) 카르타고의 터툴리안(150-155년경 출생)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출생한 법률가로 로마에서 활동하다가 카르타고로 돌아와 장로가 되었고, 서방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후에 몬타니스트로 변하였다. 이단의 징벌자이며 교회 권위의 창조자인 터툴리안이 왜 몬타니스트가 되었는가는 교회사에 남겨진 많은 신비의 하나라고 본다. 터툴리안은 이단에 대항하여 정통신학을 변증하기 위하여 몇 편의 논문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법률적인 지성을 잘 나타낸 것은 ‘이단들에 불리한 취득 시효’이다. 그의 목표는 이단들이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은 교회에 속한 것이므로 이단들이 성경을 사용하여 교회와 논쟁을 벌일 자격조차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몬타니스트가 된 후에도 교리적 오류에 대하여 투쟁을 계속하였는데 이 시대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작품은 『프락세아스에 대항하여』이다. 이는 가현설과 성부수난설을 통박하는 글이다.

3)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약 150년경에 태어났고 211년과 216년 사이에 사망)

아테네 출신인 클레멘트는 뛰어난 철학자로서 알렉산드리아 신학교의 대단히 우수한 교수였다. 그는 세상에는 오직 한 가지의 진리만이 존재하며 신앙과 이성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으므로 양자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교신자들에게 기독교의 많은 부분이 플라톤의 철학에 의해 증명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성경의 우의적(영적 상징적 의미의 깨달음) 해석방법을 발전시켰다.

4) 오리겐(185-254년)

클레멘트의 제자로서 선생을 능가했으며 교회가 낳은 가장 큰 학자이다. 현재 알려진 것만으로도 800개가 넘는 방대한 양의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중에서『켈서스를 대항하여(Against Celsus)』는 기독교 비판에 대항한 불멸의 저서이다. 또한 그는 스스로 거세하였으므로 주위의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신 23:1, 참고). 그는 동방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예수님의 신성에 관하여 하나님과의 통일성과 종속성을 동시에 주장하였다. 그의 사후에 제자들은 두 파로 갈리어서 오랫동안 신학적인 논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이론은 아타나시우스로 이어지고 삼위일체 이론을 정립한 카바도키아의 세 교부의 스승 위치에 서게 된다.

7. 신경과 교회법 그리고 교회조직의 출현

AD 200년경 영지주의와 몬타니즘 등의 이단과 투쟁하면서 신경(Creed : I Believe)과 신조, 사도적 권위의 계승으로 교회 조직 등이 생겨나게 되었고, 신약의 목록(정경)이 확립되었다.

1) 신경 혹은 신조

신앙의 규범은 사도들의 신앙과 교훈의 총체적인 결실이며 신경과 신조는 신자들이 세례문답 형식으로 표현한 신앙의 근거이다. 이는 요리문답으로 개작되었으며 2세기경에 오늘날의 사도신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대 로마신경(R 이라고 약자로 표시함)이 작성되었고 후에 종교회의에서 나케아 신조(325년),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 칼케돈신조(451년)가 작성되었다.

2) 신약성경(정경, Canon)

이단과의 투쟁에서 교회는 항상 성경을 제일의 도구로 하였으며, 2세기 전반 복음서(Gospels)와 사도서(Apostles)로 구분, 인정되었고, 대학자 오리겐에 의하여 신약성경이 편찬되었다고 한다, 그 후 교회역사가, 가이샤라의 유세비우스(AD 254-340)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의 명령으로 신약성경을 편찬하고 50부를 복사하였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으며,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현재의 신약성경 27권이 공인되었다. 이렇게 경전이 최후로 확정되기까지는 몇 세기가 걸렸다.

참고로, 구약성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되어 있으며, 학사 에스라에 의하여 정립되었다고 알려진 구약성경의 고대본을 BC 280년경에 헬라의 프톨로미 2세가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 중 72명의 랍비를 불러 희랍어로 번역하도록 하였는데 이를 70인역이라고 부른다. 그러다가 AD 90년경에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오늘날의 구약 39권의 목록이 확정되었다.

3) 사도적 계승과 조직

(1) 사도적 계승: 사도들과 후대 제자들은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커다란 권위로 군림했다. 1세기 말부터 로마의 클레멘트는 교회내의 분파를 반대하면서 사도적 계승을 내세웠으며,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는 이단을 경계하면서 감독의 권위와, 사도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장로의 권위를 강조했다. 이단들의 압박이 점점 거세어지면서 군주적 감독제도와 사도적 계승사상이 결합하게 되어 사도들의 시대와 현재를 이어주는 감독의 연속성이 강조되었다.

(2) 조직(Organization): 교회에는 성경의 의미를 결정하고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있는 감독적 형태(The Episcopal form of Church Government)가 생겨났으며, 초대교부 키프리안에 의하여 그 골격이 완성되었다. 이때부터 종교개혁에 이르도록 교회는 감독정치 형태를 취하였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희랍정교(Greek Orthodox), 감독 및 감리교회(The Episcopal and the Methodist Church)에서는 감독 정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단들과의 투쟁을 통하여 모든 교회는 신경을 공통으로 가졌고, 그때까지 분산되었던 말씀들 중에서 신약의 정경이 정립되었으며, 사도적 계승에 기초를 둔 교회 정치 형태로 감독 제도를 갖게 되었다.

8. 수도원

기독교 수도원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 수도원의 창시자는 테베(Thebes)의 안토니(Anthony)이며, 그는 AD 270년경 향리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후 15년간을 사막의 한 동굴에서 홀로 살았기 때문에 은둔자(Hermit)로 알려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본받아서 한 집에 모여서 협력하여 살았는데 이를 수도원(Monastery)이라 하고 그들은 각자의 암자(Cell)를 가졌다.

수도원 제도는 이집트로부터 전 동방에 급속히 퍼졌다. 때로는 매우 이상한 형태로 되었으니 시리아의 시몬이라는 승려는 생애의 마지막 30년을 기둥 꼭대기에서 고행하여 주두행자로 알려졌다. 12세기와 15세기 사이에 많은 주두행자가 시리아에 있었다.

아다나시우스가 세상에 수도원을 소개하였으며 암브로스, 제롬, 어거스틴이 수도원을 많이 발전시켰다. 수도원은 중세의 승려들에게 중요한 생활양식이었으며, 그들이 승려나 수녀들이 된 근본적인 동기는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악한 생활로부터 도피하는 것이었다. 금욕과 검소, 그리고 소식 등 인간의 희노애락을 제하고, 오직 하나님 교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 편집자 주 : 이학진 장로는 교회 안팎에서 말씀 인도자로 사역하고 있다. 성경 교재인 『성경 통독과 이해를 위한 싹 난 지팡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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