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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종 선교사(물 한그릇 선교회) 지난 2월 15부터 20일까지 아이티 선교를 다녀 왔습니다.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곳에선 거리를 다니기만 해도 답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진으로 갑자기 무너진 건물 밑에 아직도 깔려 있을 많은 시신들을 생각하니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대통령이 사는 궁궐도 무너졌고, 대학교도 통째로 무너져 그 안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다 죽었습니다. 도로들도 운전하기 힘들 정도로 갈라졌습니다. 아이티 온 나라가 전쟁을 치른 모습입니다. 너무 처참합니다. 지진 이후로 아이티 사람들은 난민촌을 형성하여 텐트에서 생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고, 금이 간 집들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그나마 도시에서 가끔씩 공급되던 전기와 수도는 완전히 끊어졌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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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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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사랑의 교회, CO) 유년 시절카우만(Charles Elmer Cowman)은 1868년 3월 13일 미국 일리노이 주 토우론에서 아버지 데이빗 카우만(David Cowman)과 어머니 메리 키이즈(Mary Keyes)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매우 병약하게 태어나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고 한다. 1870년 5월 그가 2살이 되었을 때 이사를 하는 길에 날이 저물어 에스테이트 고속도로변 여행자 휴식처에서 묵게 되었다. 그때 온갖 야생 꽃들이 만발하여 넓은 들판을 뒤덮고 있었는데, 찰스 카우만의 부모는 다음날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20마일 떨어진 곳에 농장을 마련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카우만은 그곳에서 자라서 학교에 다니며 주일이 되면 5마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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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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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사랑의 교회, CO) 소요리 문답 (2)‘또 틀리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정도로 맞기까지 했으니 아버지가 엄청 미웠고, 교회를 다녀야 하나라는 반감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매 덕분에 소요리 문답을 다 외웠고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터득한 신앙생활의 원칙들이 지금 나의 삶을 굳건히 이끌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모두 아버지의 소중한 은혜이다’라고 했다.1984년 4월 10일, 휴 린튼은 농촌 교회 건축용 자재를 트레일러에 싣고 순천 요양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지프 뒤에 건축 자재를 실은 트레일러를 달고 회전하는 차를 맞은 편에서 오던 관광 버스가 그대로 들이받은 것이었다. 관광 버스 기사는 음주 운전 상태였다. 휴 린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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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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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사랑의 교회, CO) 소명휴 린튼 (Hugh Macintyre Linton)은 1926년 장로교 목사 윌리엄 린튼과 어머니 샬렛 벨 린튼의 셋째 아들로 한국 군산에서 태어났다. 신사 참배 반대로 1940년 11월 14일 온가족이 강제 출국 당했을 때 휴 린튼은 14세 소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해군 장교로 입대하여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했다.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어스킨 대학을 졸업하고(1944~1947), 1950년 컬럼비아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에 프린스턴 신학교(1950~1953)를 졸업했다. 휴 린튼은 1954년 아내 로이스 린튼과 세 아들과 함께 입국했다. 그의 선교 지역은 전라남도였다. 휴 린튼은 순천으로 부임했다. 휴 린튼가(家)의 머릿 속에 아로새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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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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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자 목사(순복음사랑의교회)Africa Mission Trip(2)지난해 12월 31일부터 3주간 송성자 목사(순복음사랑의교회)는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 두번째로 열린 전국기도집회에 주강사로 설교를 했고, 담임 교회와 미주 한인들의 정성을 모아 건축중인 교회들을 방문했다. 영혼과 육신이 허기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번 여정에 코너스톤교회의 레베카 김 사모와 Robert J. Karry, 한국의 선교회 회원들이 동행했다.3일, 룽기 방문 중에 미주 한인들이 보내 준 헌금으로 건축중인 교회를 돌아 보았다. 이제 지붕과 창문 다는 일만 남았다. 5~8월에는 장대비가 오기 때문에 지붕이 튼튼해야 한다. 제조 산업이 전무해 수입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지붕값이 만만치 않은 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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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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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석 목사(NIM 대표)북한의 화폐개혁 실패의 의미북한 뉴스 중 최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뉴스는 북한 화폐개혁의 결과입니다. 북한은 후속조치를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화폐개혁을 밀어붙였는데, 곧 바로 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원성에 직면했습니다. 북한에서 화폐개혁으로 장마당에서 식량 유통이 금지되고 물가가 오르면서 초기부터 굶주려 죽는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상당수 주민들이 굶주림을 겪었고, 당국의 단속에 대해 물리적인 반발까지 증가하면서 혼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2월 초부터 긴급으로 각 지역에 구제미 지급을 명령했고, 2월 4일부터 국정가격을 고시해 결국에는 시장 통제를 풀었습니다. 김영일 내각 총리는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요 간부회의에서 화폐개혁에 대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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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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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자 목사(순복음사랑의교회)Africa Mission Trip지난해 12월 31일 비행기를 타고 벨기에, 세네갈을 경유하여 33시간만에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 도착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리는 전국기도집회에 주강사로 참가하기 위해서였고, 우리 교회와 미주 한인 여러분의 정성을 모아 건축중인 교회(학교)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영혼과 육신이 배를 곯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번 여정에는 코너스톤교회의 레베카 김 사모님과 내 아들 바비, 그리고 한국의 선교회 회원들이 동행하여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이번 집회의 제목은 “Heal the Nation-Sierra Leone 2010”, 주제 말씀은“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역대하 14: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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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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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윌리엄 린튼(William Alderman Linton)은 1891년 2월 8일 미국 조지아 주 토마스 빌에서 아버지 텔 린튼과 어머니 폰더 앨더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6월,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당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는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사 입사를 마다하고 남장로교 해외 선교부 교육 선교사로 임명받았다.입국윌리엄 린튼은 1912년 8월 23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항하여 9월 20일 목포항에 도착, 입국했다. 그의 첫 선교지는 목포였다. 곧 군산으로 가서 영명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17년 영명 학교 교장이 되었다.1919년 3.1 만세 운동 때에는 군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끌려갔다. 린튼은 일본의 부당한 압제에 분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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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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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사랑의 교회, CO) 천국에서 만납시다 (2)“왜 못 들어가게 해요?” 하니까“당신은 안 돼요”하는 것이었다.“나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인 신앙을 가졌어요. 하나님 말씀대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범을 보여 주신 대로 실천해온 사람인데 당신이 누구기에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나는 베드로요. 당신은 못 들어 간다니까.”“사람 잘못 본 게 아니예요?”“잘못 보긴 왜 잘못 봐. 당신 한국에서 온 쉐핑 아니요?”“옳아요. 헌데 왜 못들어 간단 말이예요?”“당신의 그 성급한 성질을 고치고 오지 않으면 못 들어 간단 말이요.”“알겠어요”하고 수문장 베드로와 열두 진주로 찬란하게 단장된 천국문만을 잠깐 돌아보고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쉐핑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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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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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일 기자는 시카고한인교회의 담임인 서창권 목사를 5년여만에 다시 만났다.‘1세와 2세가 함께 하는 북한선교대회’, ‘행복한 가정 만들기 특별집회’, 성도들의 은사 개발을 돕는 ‘제2회 사역박람회’ 등의 커다란 행사뿐 아니라, 예배와 교육, 선교, 교계 및 한인사회에서 다양한 사역을 왕성하게 이끌고 있는 서창권 목사의 목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2010년 9월이면 담임 목회 12년을 맞는다. 너무나 감사하다. 쉽지 않은 이민 목회를 10년 이상 할 수 있었고, 교회가 안정되게 성장하여 감사하다. 시카고한인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120명이던 성도들이 지금은 주일 출석교인만 550여 명이다. 무엇보다 주님을 전혀 모르던 이들이 구원을 확신하고 믿음이 약했던 이들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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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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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선교사)들과의 관계 (2)그때 다른 선교사들의 집은 2층 빨간 벽돌 양옥에 해마다 페인트칠을 하고 고용인을 시켜 치장에 바빴지만 쉐핑의 집은 나무 기둥에 흙벽을 맞춘 여느 선교사 주택의 변소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초라한 집이었다. 폐일언하고 그가 서거했을 때 동아일보는 그 집을 사진 찍어 ‘찌그러진 집’이라는 제하로 보도한 적도 있었을 만큼 퇴락했어도 못 한 개 박지 않았다. 그리고 집 마당에는 호랑이가 새끼를 낳을 정도로 잡초가 무성한데도 하나님 사업에만 바빠 풀 한 포기 뽑을 틈이 없었다.다른 선교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그렇게 비신앙적이라거나 양심적으로도 그리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쉐핑의 말이 그르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활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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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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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목회, 1세, 1.5세, 2세, 3세가 함께 가기 위하여 지난 1월 27일 오전, 시카고한인교회(서창권 목사 담임)에서 시카고교역자회가 주관하는 제1회 목회자 세미나가 열렸다. 강사는 남가주 사랑의 교회 2대 담임인 김승욱 목사였다. 목회자의 길을 준비하면서 김 목사는 ‘자아가 깨지는’ 확실한 경험을 했으며, 성령님은 김 목사로 하여금 인간의 의는 더러운 걸레에 불과하며 ‘I am nothing’이란 고백을 철저히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리더상은 ‘섬기는 지도자’이다. 저서로는 『허심유복(생명의 말씀사)』『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게 하라(두란노 출판)』가 있다. 아래의 글은 세미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미국의 격언 중에 “나무 심기 가장 좋은 때는 20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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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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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적인 존재 (2)그렇다 해서 아무 성의 표시도 안한다는 것은 한국 여성들로서는 허전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그래서 이번만은 쉐핑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정신을 본받기 위한 계기로 삼는 데 목적이 있다는 등 옹색한 구실을 세우긴 했지만 실은 한번쯤 대접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해서였던 것이다.그래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감행했다.이일학교 교정과 근처 산에 구름떼처럼 몰려든 인파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불신자, 각계 사회단체 대표자, 교장, 교사들이었다. 식의 프로그램 거의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었다.이 식에서 특이하고 감동적인 것은 기독교인도 아닌 어떤 청년의 연설이었다고 한다.“저는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쉐핑 교장이 진실로 가치있는 삶을 사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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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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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PE CHURCH for the HOMELESS“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버림받은 우리들을 가족처럼 받아 주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다른 교회는 우리들을 죄인 취급한다.”올해 4월이면 창립 8주년을 맞는 아가페 노숙자 교회. 이 교회는 매주일 아침 일찍 문을 연다. 노상에서 밤을 지낸 홈리스들이 냄새에 찌든 몸을 이끌고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75~90명의 노숙자들은 오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고 식사도 한다. 현재 아가페 교회에 출석하는 노숙자수는 줄잡아 250~300명 정도.“맨처음 밴을 빌려 홈리스들을 데리러 갔을 때, 21명이나 기다리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18인승 밴이어서 두 번에 그들을 실어 나르면서 첫 예배를 드린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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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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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을 안했나 (2)쉐핑에게 생리적 결함이라도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남자가 외면할 만큼 박색이었던가? 그것도 아니다.참외처럼 길쭉한 얼굴에 오똑한 코가 여자 치고는 약간 크다 할 수 있으나 보통 키를 넘는 늘씬한 체구에 비하면 오히려 균형이 알맞다. 눈동자는 봄빛처럼 빛났으며 굳게 다문 얄팍한 입술, 우유 빛깔처럼 뽀얀 혈색 등 모두가 나무랄 데 없는 미인축에 속한 편이었다. 거기에 목소리가 꾀꼬리 소리처럼 아름다운데다 리듬이 있어 보통 회화에도 듣는 사람의 귓전을 끌어당길 만큼 음악적이었다.그런데도 왜 결혼을 안했던가?결혼하는 데는 서로의 정도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지식을 따라 동거하라”(벧전 3:7)에서 지식이라 함은 두뇌를 말한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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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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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 4:14)말씀, 기도, 심방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던 1월 19일, 시카고 북쪽 근교에 자리잡은 하이랜드 장로교회를 찾았다. 묵상에 깊이 잠긴 교회는 고요한데, 차분하고 앳된 인상의 김경문 목사가 적막 속에서 기자를 맞는다.“올해 9월이면 이 교회는 창립 33주년을 맞는다. 나도 올해 33살이 되기에 감회가 깊다”면서 김 목사는 교단(PCA) 내에서나 청빙 목사 중에서 자신이 최연소 담임목사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L.A.를 처음 떠나왔다는 김 목사는 시카고의 겨울이 몹시 춥다고 덧붙였다.김 목사는 2009년 11월 29일에 부임하여, 12월 13일에 위임예배를 드렸다. 오랜 공백 끝에 젊고 새로운 담임 목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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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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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사랑의 교회, CO) 제주도 선교 (2)그리고 6년 후인 1914년에 남부 제주 모슬포에 윤명식(尹明植) 목사가 전라노회(全羅老會)로부터 파송되었다. 1917년에는 전라 노회가 전북과 전남 두 노회로 분립하면서 제주 북부 지방은 전북 노회가, 남부 지방은 전남 노회가 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제주 본도(本島)에는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추자도에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아 미개척지로 방치되어 있었다.그 당시 광주 미션회 선교사들은 여름 한 달 동안 지리산으로 피서가는데 쉐핑만은 가지 아니하고 제주도를 순회 전도하면서 추자도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모슬포를 중심하여 확장주일학교를 설립하여 추자도에도 확장주일학교 선생을 파송한 것이 1922년이었다고 한다.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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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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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석 목사(NIM 대표)2009년 한 해 동안 북한에선 그 어떤 해보다 세상을 놀라게 만든 많은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호에 2009년 북한의 중요한 이슈와 사건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권세습 본격화와 사회주의 계획경제 복귀를 겨냥한 150일, 100일 전투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한 몸부림은 다음 두 이슈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습니다.핵과 미사일북한의 독재정권 세습이나 북한의 식량과 인권유린 등의 문제들보다 미국을 비롯하여 온 세계가 가장 걱정하는 북한의 현실적 문제는 바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과 장거리 미사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무기나 테러를 위한 살상용 무기들도 상당히 위협적이지만 북한이 2009년에 발사한 중장거리
간증
크리스찬저널
2010.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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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 전도(3)“마을 부인들이 들에 나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 합니다. 마을 부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가마를 탈 수 있겠어요?”“탈 수 있어요. 가마꾼을 불러 주세요.”“그런데 길이 험하고 식전에 출발해야 하니까 삯을 두 배나 달라고 할 텐데요.”“두 배의 삯은 절대로 안 주겠어요.” 쉐핑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러실 작정이라면 이 집 노인장 보고 흥정을 하라고 하죠.“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곧 떠나야 하니까 서두르라고 하세요.”노인은 곧 마을로 출발했다.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가마꾼 두 명이 문 앞에 대기했다. 그들은 흰 무명옷에 상투 위에는 작은 밀집 모자를 비스듬히 멋지게 쓰고 있었다. 쉐핑은 가마 의자 위에 올라 앉았는데 자리가 비좁아서 다리를 구부려야 했다. 가마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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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0.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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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회 전도(2)그녀의 추상같은 명령에도 소년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목적지 마을까지는 아직도 20리 길을 더 가야했다. 그 길은 매우 험한 길이었다.“선교사님! 저는 선교사님을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요. 이 밤중에 호랑이가 덤벼들 테니까요!”“나는 하나님께서 돌봐 주실 거다. 이 일은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일이니까… 너는 가서 말(馬)을 붙잡아 오너라. 그리고 마을에서 만나자. 등불은 나를 주고 가렴.”소년은 할 수 없이 오던 길로 내려갔다. 쉐핑은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막상 오르막길을 향해 발을 내어 디디려 하니 가슴이 콱 메어 올랐다. 그녀는 코트를 여미고 폭풍우 속을 걸어 올라갔다. 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에 휘몰아쳤다. 몇 시간이 흘렀다. 폭우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렸다. 그녀
선교사열전
크리스찬저널
2010.01.11 00:00